[인터뷰]‘루·천·남’ 윤운중 “예술은 스스로 음미할 수 있도록 해야죠”

“공연장에서는 졸고, 영화·드라마는 왜 찾아서 볼까요?”
아르츠콘서트 앞둔 윤운중씨

미술해설가 윤운중씨. (사진=이유석인턴기자)

미술해설가 윤운중씨. (사진=이유석인턴기자)

미술해설가 윤운중씨. (사진=이유석인턴기자)

클래식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팔짱을 끼고 졸기 바쁜 관객들을 ‘깨운 공연’이 있다.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아르츠 콘서트(Arts Concert)’가 국내에서 열렸다. 아르츠 콘서트는 서로 연관 있는 고전 미술과 클래식 음악을 공연장에서 함께 보여주고 연주한 뒤 이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는 공연이다. 특히 이 공연에서 ‘루천남(루브르 천 번 다녀온 남자)’이란 별명을 얻은 윤운중(사진·46)은 콘서트마스터로 맹활약하며 단연 주목을 받았다.

그의 티켓파워란 실로 대단하다. 연간 2-3회에 걸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에서 그는 2,000여석을 매회 매진시켰다. 지금까지 아르츠 콘서트는 100회 이상 공연하며, 회가 거듭될수록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미 그의 공연을 본 관객 수만 5만여 명이 넘는다.

윤운중이 가는 곳마다 관객들이 몰리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그의 해설에 관객들은 일단 빨려들고 만다. 10여 년 동안 유럽 전역의 미술관을 돌며 원화를 직접 보고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미술과 음악 이야기를 풀어낸다. 윤운중 해설의 강점은 무엇보다 ‘현장성’에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최대한 실제 미술관의 작품을 서울의 공연장으로 옮겨 놓아 바로 곁에서 설명해주는 듯한 현장감을 전한다. 또 그의 설명은 늘 유쾌하고 재밌다. 소위 잘난척이나 한 번 해보려는 이론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속속들이 전하기 때문.

루브르를 천 번 이상 방문하며 유럽에서 미술관 가이드로 명성을 쌓은 윤운중. ‘루천남’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걸어다니는 종합예술사전’, ‘유럽 도슨트계의 전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10여년을 다니던 삼성전자 연구원 생활을 과감히 접고, 미술관 가이드로 일하는 친구의 권유로 미술계에 발을 디딘 그의 남다른 행보가 눈길을 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고흐와 고갱이 형제인 줄 알았을 정도로 예술과는 다소 먼 인생을 살았다”는 그가 미지의 세계로 갑자기 발을 뻗은 이유는 무얼까.

▶잘나가던 평범한 삼성전자 연구원, 미술해설가로 전격 변신?

공고 졸업뒤 운좋게도 바로 삼성전자 공채에 합격했어요. 이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무선 자동청소기·드럼세탁기 등을 연구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죠. 너무 오래다니다 보면 때로는 회의감에 젖기도 하고 말이에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건 IMF 직후였습니다. 당시 롤모델로 여기던 존경하는 선배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았죠. ‘저 나이쯤 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모습을 보며 10년 후의 제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고민 끝에 10년 후의 저를 위해서 당장 뭔가를 하기로 결심했죠. 노숙을 해도 좋다는 각오로 회사를 나온 그는 이후 5년간 의류 무역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럽에서 도슨트(미술해설가) 프로젝트 사업를 하고 있던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요. 유럽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 일손이 모자라니 함께 일해보자는 깜짝 제안이었죠. 관광가이드? 그때만 해도 참 이상한 직업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단호히 못한다고 거절을 했죠. 그렇지만 친구의 수차례 설득에 못이겨 결국 유럽으로 갔어요. 그 후 받은 현장에서 받은 ‘이 일에 대해 크게 잘못알고 있었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으로 자연스레 그 일에 빠지기 시작했죠.

▶현지미술관에서 처음받은 신선한 충격(?), 구체적으로 어땠나.

그때 친구 덕분에 바티칸박물관의 <천지창조>를 제대로 알고 접했죠. ‘이게 진짜 살아있는 예술품이구나..’ 알고보니 나만 빼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인류사에 걸작이죠. 우선 일에 가장 본질적인 측면부터 살폈습니다. ‘인류사의 걸작을 생생한 현장에서 대중들과 교감하며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진한 감동을 받았죠. 미대 교수들은 이런 작품에 대해 강연할 때 강단에서 슬라이드로 한장한장 넘겨가며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죠. ‘과연 그 안에서 얼마나 깊은 울림이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현지에서도 제대로 된 해설이 없으면 보통 관광객들은 30초도 채 보지않고 작품을 지나쳐요. 그저 관광가이드북에 체크하고, “나 이거봤다”는 인증샷 남기기에만 무지 바쁘죠. 제대로 된 감상(Look at)이 아닌 그저 본 것(To see)이었죠. 이런 관객들에게 제가 원작을 보고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거죠. “(윤운중)선생님은 제가 평생 만난 가장 중요한 세 사람 중 한 분이세요”라는 극찬을 받아 매우 뿌듯했던 순간도 있습니다. 그 관광객 입장에서는 유럽에 처음 왔는데, 우연히 저를 만났겠죠. 또 난생처음으로 현지 미술해설이라는 걸 들으니까 너무 큰 감동을 받으신 거죠. 10여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로보트, 세탁기를 아무리 열심히 개발해도 누구 하나 ‘빨래가 너무 잘된다고, 세탁기를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눈물 섞인 반응을 보내주시지 않았는데..그 순간 예술이 진한 감동과 전율이 있고,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으로 분명히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도슨트(미술해설가)라는 말이 낯선데?

아직 그 분야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미술작품을 통해 대중과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이 바로 도슨트(미술해설가)입니다. 사실 미술 해설로 생계를 유지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새로운 길을 열게 된거죠. 본래 도슨트는 직업적 이미지라기 보다는 자원봉사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미술사 전공하거나 젊은 친구들 중에서 그런(봉사)쪽으로 보람을 느껴 도슨트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유럽에서도 도슨트보다는 투어가이드가 오히려 익숙하죠. 놀랍게도 한국에서의 인식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투어가이드가 굉장한 선망의 직업입니다. 특히 미술관 해설을 아무나 할 수도 없어요. 미술관 해설을 한다는 것은 결국 역사, 문화예술사를 모두 섭렵하지 않으면 할 수없는 거니까요. 흔히 미술관을 돌아본다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를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잖아요. 전 특히 이분야(미술해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유럽미술관을 찾아온 관광객들 대상으로 예술작품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유럽역사도 흥미로웠지만 미술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미술관 전문 도슨트가 됐죠.

▶원래 유년시절부터 미술에 일가견이 있었나?

아뇨. 유년시절에 예술은 제 인생에서 가장 먼 분야였습니다. 10년 전 로마에 갈 때는 르네상스의 의미조차 제대로 몰랐으니까요(웃음). 심지어 그 다음해 파리 루브르에 해설을 준비하러 갔을 때는, 오르세 미술관이 뭐하는 곳인지 조차 몰랐죠. 제가 원래 좋아하던 건 운동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여기저기서 상도 많이 받았죠. 준프로급은 확실히 될걸요.

▶아르츠 콘서트, 음악과 미술이 접목한 분야에도 본래 관심을 두셨나?

전혀 아닙니다. 스톰프뮤직 김정우 대표가 유럽박물관 투어 관광객 손님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없었을 공연이죠. 우연히 미술 해설을 처음 들어본 김 대표는 “스토리도 퍼포먼스도 너무 좋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러던 중 “음악과 관련된 미술사를 엮어 공연 현장에 올리면 어떻겠는가? 음악과 미술을 무대에 올려보자”고 김 대표가 제의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당연히 작품은 미술관에, 클래식은 공연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농담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서울사무실로 김 대표가 정말 찾아 오셨더라구요. 사실 김 대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파리가 온통 미술로 뒤덮인 도시인 줄 알았지, 음악과는 별개의 도시인 줄로 알았죠. 미술해설 하러 파리에 왔지 클래식 하러 온 게 아니어서 당연히 역사와 미술만 봤었어요. ‘미술과 음악에 접점을 찾아보자’ 그때 처음으로 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살짝 방향성을 전환해서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미술은 음악으로, 음악은 미술로 통하고 있었죠. 그때부터 클래식음악에 빠져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리스트의 집주소 알아내서 직접 찾아가서 생가를 그린 미술작품과 현장에서 비교도 해보고, 모차르트·쇼팽 생가 등도 당연히 가봤어요. 전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으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어려운 클래식, 미술 문화계에서 ‘아르츠 콘서트’가 흥행에 성공한 비결은?

공연을 기획 하신분들은 사실 처음에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전 분명 잘될 줄 알았어요. 대중들이 무거운 클래식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뭘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재미있어서죠. 말도 없이 조용히 나와서 연주만 계속하는 클래식을 따분하다는 관객들을 사로잡으려면 조금 쉽게 풀어가면 됩니다. 전 미술이든 음악이든 최대한 일상에 언어로 쉽게 풀어 설명해요. 예술은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이죠. 전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주로 했었습니다. 공놀이하며 뛰어 노느나고 ‘예술적 감수성’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지금와서 보니까 갑자기 예술이 너무 재밌는거죠. 저를 찾아온 관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예전에 저보다 예술적 감수성이 메마르신 분은 아마 여기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에요. 관객분들은 저마다 모두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을 모두 갖고 계시죠. 그러니 충분히 예술이 주는 본연의 치유와 평안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결핍된 영혼을 치유해주죠.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제가 괜히 하는 말은 아닙니다. 믿고 즐겨보세요. 정말 재미있고 좋은거니까.

▶9일(일요일) 공연도 전석 매진이라던데, 이번 공연의 관람포인트는?

해마다 선보였던 여행편, 테마편과는 달리 2014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컨셉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선보였던 ‘유럽 여행편’을 총망라하는 대표적인 유럽 전반에 걸친 여러 미술관의 걸작과 클래식 음악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특히 유럽 미술관과 박물관의 여러 작품들을 우리 일상 속에 비추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삶·가족’ ‘희망·사랑’ ‘슬픔·고독’ 등 우리네 가까운 일상을 유사하게 표현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그에 따른 클래식음악의 연계성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볼 거에요. 사실 이번 공연만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늘상 그랬듯, 작품에 대해 있는 사실 그대로 설명해요. 대신 재밌고 알기 쉽게하죠.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 제 흥미를 끈 지점이 뭔지 전 명확히 기억해요. 제가 대중들의 예술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즐기러 오세요. 예술을 편하게 생각하고 가까이만 두시면, 제가 언제 어디서든 맘껏 웃겨 드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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