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개월동안 끌어온 삼성과 대우의 자동차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법정관리」와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사재출연」이라는 절묘한 방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게 됐다.이 방식은 특히 정부는 물론 채권단, 당사자인 삼성, 대우 등 모든 경제주체에게 타격을 입히지 않고 삼성자동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은 이날 『시간을 끌면 끌수록 국가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현행법이나 경제체제 아래서 자동차 빅딜을 성사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없어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 방식은 우리 경제 주체 모두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나=자동차 빅딜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동차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삼성 관계사가 삼성자동차의 부채 및 손실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관계사들의 동반부실과 실정법상 문제가 발생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관계사들이 부채를 분담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반발과 외국인주주들의 제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도 이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상장사들이 부채를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 경우 법적소송 등 주주들의 반발이 잇달아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이를 주저해왔다.
삼성자동차의 부실이 삼성 관계사의 과도한 자금부담과 대외적인 신뢰상실로 인해 경영이 악화될 경우 계열기업 전체로 확산돼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에 배치된다는 점도 법정관리라는 카드를 사용하게 된 배경가운데 하나. 빅딜 실현을 위해 무리한 금융지원을 강행할 경우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개혁 기조에 어긋날뿐 아니라 한국 경제정책과 기업과의 투명성 및 신뢰도 손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 인수를 조건으로 대우가 삼성에게 요구했던 부대조건들도 이번 결정을 부추겼다. 대우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삼성에게 요구했던 옵션들이 삼성에게는 부담이 됐다는 얘기다. 대우는 그동안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는 대신 총생산량의 50%를 삼성이 판매하고 대우가 발행하는 회사채를 인수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삼성은 특히 대우지분인수나 회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삼성의 이번 결정으로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 신청후 법원의 결정에 따라 독자회생이나 해외매각, 대우에의 매각 등의 형태로 정리될 예정이다.
삼성은 이날 李회장이 사재로 출연하는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2조8,000억원)중 대부분(2조2,000억원)을 채권단의 부채상환에 사용키로 하고 30일 부산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삼성자동차는 법원의 합법적인 결정에 따라 독자회생이나 매각의 길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때 독자회생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李회장의 사재를 출연해 자동차사업을 정리하기로 결단을 내린 상황에서 또다시 자동차사업을 시작하기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도 『자동차 사업에는 미련이 없다』면서 『이번 결정을 계기로 삼성자동차의 늪에서 벗어나 전자·금융 등 핵심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해 독자회생의 가능성은 일축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매각이나 대우에 매각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법정관리를 통한 법적인 절차를 마친 후 대우에 매각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명목상으로는 대우와의 빅딜이 완전히 무산된 것으로 보이지만 법정관리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대우에 되파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이기호(李起浩)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날 『외국회사가 삼성차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고 주력기업 중심의 기업재편이라는 구조조정 원칙에 비춰볼 때 결국 향후 매각과정에서 대우가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정부는 물론 채권단, 빅딜 당사자인 삼성, 대우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선택』이라며 『이를 통해 경제주체 모두가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대우에게 삼성자동차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게 되면 「특혜」라는 인식없이 채권단이 부채상환 기간을 늘릴 수 있는 등 금융지원이 가능하고 공개입찰을 통해 제3자에게 매각하면 대우가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고진갑 기자 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