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2-신용은 생명] <상> 은행이 깐깐해진다

신용도 낮으면 아예 대출 못받는다


[바젤 2-신용은 생명] 은행이 깐깐해진다 신용도 낮으면 아예 대출 못받는다 이병관 기자 comeon@sed.co.kr 관련기사 • 윌리엄 라이백 금융감독원 특별고문 인터뷰 내년 1월부터 ‘바젤 2(신 BIS협약)’가 시행되면 은행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면서 은행은 물론 기업ㆍ개인의 금융거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바젤 2는 금융공학 발전 등으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금융환경에 맞춰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정교하게 측정하기 위해 도입한 새로운 자기자본규제 협약이다. 기존의 ‘바젤 1’이 자기자본에 대한 단순한 양적 규제였다면 바젤 2는 여기다 자본의 ‘품질’까지 세세하게 따지겠다는 것이다. 기업 등 고객의 신용도를 엄격히 평가, 돈을 떼일 위험이 높은 고객에게는 대출을 중단하거나 높은 금리를 적용하게 된다. 바젤 2 시행을 앞두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은행 문턱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용도에 따른 위험을 정확히 반영=은행은 고객에게 돈을 빌려 남에게 꿔주는 과정에서 이자 차액을 중요한 수익으로 삼는다. 은행이 수익성만 쫓아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자 지난 1988년 선진국 정부가 모여 은행이 일정 규모의 자기자본을 반드시 쌓아놓도록 의무화하는 협약을 제정했다. 이것이 바젤 1이다. 100억원을 대출(위험가중자산)할 때 8억원은 자기 돈(자기자본)으로 하라는 ‘BIS 기준 8% 룰’이 핵심 내용이다. 바젤 1에 따르면 어떤 대출이든 대출액의 100%를 위험가중자산으로 쌓아야 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자산유동화증권 등 파생금융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지자 ‘바젤 1’으로는 자본의 적정성을 감독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도입된 게 바젤 2다. 즉 대출 받은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위험가중자산을 달리해 그에 맞게 자기자본을 쌓으라는 얘기다. ◇신용도에 따라 최고 1,250%의 위험가중자산을 쌓아야=바젤 2에 따라 은행들은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적게는 대출금액의 15%에서 많게는 1,250%의 위험가중자산을 쌓아야 한다. 과거에는 신용도에 관계없이 무조건 대출금액만큼만 위험가중자산을 쌓으면 됐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은행이 스스로 개별 기업의 부도율, 부도에 따른 손실률 등을 측정해 신용등급표를 만든 후 이를 바탕으로 위험자산을 쌓아야 한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은행 내부 등급이 1등급(부도율 0.1%)이면 대출액의 30%만 위험자산을 쌓으면 되지만 9등급(부도율 20%)이면 무려 351%로 1등급 기업보다 10배나 많은 자산을 쌓아야 한다. 위험가중자산을 많이 쌓으면 자기자본을 그만큼 더 쌓아야 하고 이는 대상 기업의 대출금리 인상과 대출한도 축소로 이어진다. 은행이 부실대출을 처분할 때 활용했던 자산유동화증권의 경우 1,250%를 쌓아야 한다. B+ 이하 등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채권을 유동화할 때는 예금 등을 활용하지 말고 은행 돈으로 하라는 얘기다. 지금은 자산유동화증권에 대해서도 100%의 위험가중자산만 쌓으면 된다. 이밖에 바젤 2에서는 은행 임직원의 횡령 등 내부사고 리스크도 계량화해 자기자본을 쌓도록 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추가로 자기자본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 영국의 베어링스은행이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일거에 붕괴됐는데 이런 위험에 대비해 자기자본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또 감독 당국이 자본적정성뿐 아니라 금리, 유동성, 편중 대출 리스크도 감독해 적정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BIS비율이 8%를 넘더라도 추가로 자기자본을 쌓아야 한다. 은행의 자기자본 관련 공시도 확대해 투자자 등 시장의 감시도 대폭 강화했다. ◇엄격해지는 은행 대출=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벌써부터 은행 거래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있다. 한도대출 한도 축소는 물론 상환 압박을 받는 사례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은 사용하지 않는 미사용 한도대출분에 대해서도 위험가중자산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당 기업에 금리인상이나 한도축소로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량기업의 경우 바젤 2 도입으로 신용대출 금리가 1%포인트 정도 인하될 수 있는 반면 신용도가 낮아 대출한계 등급에 속하는 일부 중소기업들의 경우 추가로 2%포인트, 많게는 3~4%포인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높은 금리를 부담하더라도 대출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대출금을 아예 상환하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경섭 국민은행 리스크캐피털부장은 “이미 일부 은행은 한도대출 미사용분에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한도축소 및 상환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적정 대출한도를 유지하고 은행과 수시로 재무변동 정보 등을 공유함으로써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상철 외환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은 “기업은 은행과 동반자적 관계라는 자세로 앞으로는 신용평가 관련 세부 자료를 폭 넓게 자주 제공해야 신용점수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력시간 : 2007/11/12 17:57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