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융합 통해 담은 존재의 의미

세계적 사진작가 김아타 6년 만에 개인전
온에어·인달라 시리즈 등 독특한 작품 세계로 유명
사진 한장에 1억 호가… 빌 게이츠가 구입하기도

인달라 시리즈 중 '도덕경'

온에어 프로젝트 중 '파르테논 신전'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 뉴욕. 뉴욕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각양각색 건물과 거리풍경, 간판, 뉴욕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촬영한 1만장의 사진들을 겹쳐 놓으면 최종적으로 어떤 이미지가 남을까. 엄청난 양의 사진들이 쌓이고 겹치면 뭔가 특별한 이미지를 얻을 것 같지만 결국 원래의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회색 톤의 캔버스만 남는다. 뉴욕뿐만 아니라 워싱턴, 모스크바, 베를린, 프라하, 베니스 등 세계의 그 어떤 도시도 최종 이미지는 실체가 사라진 모노 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58·사진)가 자신의 수십 년 작품 활동을 통해 세상에 일러주는 인생의 본질적 의미다.

1956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아타는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본명은 김석중. '나는 너와 동등하다'는 의미를 담아 '아타(我他)'라는 예명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의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권력과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무화(無化)시키고 있다.

실제로 1991년부터 5년간 진행했던 '해체' 연작은 발가벗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들판 등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관념을 해체시키고 자연과 하나가 되게 했다. 지난 2002년까지 이어진 '뮤지엄' 시리즈는 인간을 박물관 유물처럼 유리 박스에 담아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되물으며 세계 사진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그렇듯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면서 김아타의 작품은 사진임에도 1억원을 호가했고, 지난 2007년에는 빌 게이츠가 그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오던 김아타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6년 만에 개인전 '리-아타(RE-ATTA): 1부-온 에어(On-Air)'를 오는 9일부터 2월 7일까지 청담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갖는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은 '온 에어 프로젝트'로, 필름 한 컷에 8시간 이상의 노출을 주어 움직이는 대상을 그 속도만큼 사라지게 하는 작업이다. 고체였다가 천천히 녹으면서 액체가 된 뒤 결국 사라지는 얼음의 성질을 이용한 '마오의 초상', '파르테논 신전' 등 '얼음의 독백' 연작은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결국 의미 없다는 깨달음을 주면서 '비움'의 철학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온 에어 프로젝트'의 완결판으로, 도시를 찍은 '8 hours 시리즈', '인달라(Indala) 시리즈',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시리즈 등 총 40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인달라 시리즈'는 수백에서 수만 장의 사진을 겹쳐 놓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낳는 것으로, '온 에어 프로젝트'의 대미라고 할 수 있다. '인달라'는 '인드라넷'과 같은 말이며, 우주의 모든 것은 그물처럼 얽혀 관계한다는 의미. 작가는 '인달라 시리즈'에서 논어, 도덕경, 반야심경 등 경전의 글자 하나하나, 서양미술사 대가들의 작품 한 점 한 점, 그리고 세계 주요 도시의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수많은 개체가 하나로 포개지며 원래 실체를 알 수 없는 추상화 같은 이미지로 남아 각자의 정체성을 잃는 듯하지만 실은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채 관계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제 작업의 핵심은 빛에서 색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색에서 빛을 찾는 겁니다. 즉, 사물에서 본질을 찾는 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 전시회를 시작으로 그의 최근 작품 세계를 총망라해 보여주는 전시기획이 총 3부에 걸쳐 내년까지 이어진다. 1부가 '온 에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소개된다면, 8월말 열리는 2부에서는 그가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표현한 '자연의 그림' 시리즈가 선보인다. 일본 히로시마와 인도 갠지스 강변, 우리나라 비무장지대(DMZ) 향로봉, 군부대 사격장, 바닷속 등 곳곳에 새하얀 캔버스를 설치해 놓고 자연의 흔적을 담는 프로젝트로 작가는 카메라를 버리는 대신 캔버스를 카메라로 사용한다. "캔버스가 하나의 바로미터이자 리트머스지가 돼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죠. 캔버스가 자연의 기운생동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저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쓰는 겁니다."

작가는 "내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르는 이 작업(자연의 그림)을 위해선 내 모든 걸 다 버려도 좋을 정도"라며 "끊임없이 해체하고 융합하는 작업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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