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러시아 추가 제재 강도 높인다

美, 주요 기업·인사 대거 포함… EU도 7월 안으로 동참 예정
루블화 2개월만에 최대폭 하락
푸틴, 쿠바 감청기지 재가동 부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한층 강화된 제재를 내놓았다. 변죽만 울렸던 기존의 제재와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 주요 기업 및 인사들을 대거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겠다는 계산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러시아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며 4차 대러 제재안을 발표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와 천연가스 회사 노바텍, 러시아 3위 국영은행인 가스프롬뱅크와 국영경제개발은행인 VEB 등 러시아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칼라시니코프콘체른 등 군수 업체 8곳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조언자인 이고르 셰골레프, 세르게이 네베로프 러시아 하원 부의장 등 푸틴의 최측근 인사 4명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기업 및 인사들은 △미국 금융시장을 통한 90일물 이상의 중장기 자금조달 제한 △자산동결 △비자발급 중단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지난 3월 당시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된 것을 계기로 미국은 그동안 세 차례의 제재안을 내놓았으나 푸틴의 독주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이번 4차 제재안에 대해 스티븐 피퍼 전 주우크라이나 미국대사는 "이번에는 러시아 메이저 기업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며 러시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역대 제재안 중) 러시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움직임"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역외시장에서 러시아 루블화는 최근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분야 등에서 러시아와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과감한 조치를 주저하던 EU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의 지원 기업 및 인사 △크림반도 병합 및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소요사태를 부추기는 러시아 의사결정자들에게 물질적·재정적 도움을 주는 기업 및 인사 등을 제재하기로 합의했다. EU가 러시아 기업 제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제재 대상은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이달 말까지 선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EU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유럽투자은행(EIB)의 신규 투자도 중단하기로 했고 총 4억5,000만유로(약 6,270억원) 상당의 대러시아 원조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러시아에 대한 서구권의 이 같은 강경 방침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푸틴의 이중 플레이를 더 이상 놓아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실제 수개월째 지속돼온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소요사태를 놓고 푸틴은 겉으로는 당사자 간 평화적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적극 지원해 이 지역의 정정불안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국경도시인 구코보에서 우크라이나 영토를 향해 다연장 로켓포인 'BM-21 GRAD'가 발사되는 동영상이 이날 인터넷에 공개되는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됐다고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T)는 전했다.

한편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차 브라질에 머물고 있는 푸틴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제재조치는) 공격적 정책"이라며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푸틴은 11일 미국의 턱밑인 쿠바를 방문해 냉전 당시 사용했던 러시아 감청기지를 재가동하는 데 합의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반면 서구권은 이번 제재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러시아의 전향적 태도 개선이 없을 경우 더욱 강도 높은 제재안을 내놓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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