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화없이 노동법안 통과 등 파행만/그린벨트 해제 등 지역 이기주의도 만연96년 한국정치는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채 해를 마감하고 97년의 대권행진을 맞게됐다.
신한국당이 지난 26일 새벽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기습처리함에 따라 15대 국회개원 이후 여야 3당이 가까스로 유지해온 정파간 균형과 견제는 일시에 무너지고 연말정국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허를 찔린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권공조체제를 강화하면서 김영삼정권타도를 위한 연대투쟁에 나서는 한편 이들 법안의 경우 「원천무효」라며 헌법소원과 개정법안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사법적 대응을 병행하고있다.
세밑에 터진 최각규 강원지사의 자민련 탈당과 일부 자민련소속의원들의 신한국당 입당,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기습처리사건은 예견됐던 여야간 대권레이스의 일정을 앞당기고 촉발시킨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안고 출발한 15대국회는 당초부터 대권가도를 위한 권력구도장치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총선에서 여당의 대승, 충청지역과 경북대구지역의 극심한 지역정서 표출 등은 15대국회가 대권레이스이전에 어떤 향방으로 진전될 것인지를 예견케하는 징조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대, 세밑에 이뤄진 자민련세력권의 여권으로의 이탈은 그같은 정치권구도변화의 예정된 향로를 확인해준 셈이다.
한마디로 15대국회는 대선의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는 태생적 한계를 지닐수 밖에 없다는 당초의 지적을 넘지못하게 될 전망이며 최근의 파행적 사태들은 그런 전망을 다시금 확인해주고 있다.
우리정치의 오랜 고질이 한발짝의 진전도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백30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적자, 1천억달러가 넘는 산더미외채, 증시의 추락, 대형부도사건의 빈발 등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경제상황을 외면한 국회와 정치권은 이제 파행으로 올해를 마감함에따라 전도가 불투명한 내년경제에 또하나의 큰 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15대 국회는 급속한 세대교체를 통해 한가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과반수 확보를 겨냥한 신한국당의 영입문제로 법정개원일을 한달 이상 넘기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여야간 끈질긴 대화와 타협으로 물리력을 동원하지않고 정상 개원됐다.
여야는 정기국회 기간중에 발생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해 당리당략을 뛰어넘어 「대북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초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비준동의안도 표결로 무난히 처리했다.
여야의원들은 특히 이번 국정감사 때 경부고속철도 부실공사에 대한 집중적인 추궁을 통해 공사일정을 재조정토록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여야 총무들은 또 20여 차례의 회동을 통해 정치관계법과 방송관계법, 검경 중립화 관련법 등 3개분야에서 50개의 제도개선 합의사항을 이끌어냈다.
이런 가운데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한 정책개발 노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초선중심의 의정이 보여준 미숙성과 당지도부중심의 일방통행식 의정운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자도주소주에 제한을 담은 주세법개정이 위헌판결을 받아 그 단적인 예를 보여줬다. 특히 경제전반에 대한 대안제시보다는 미시적 대응책에 매달리거나 그린벨트해제에 대한 지역이기주의적 접근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황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