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등 선진국들은 지난 1980년대부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과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적 보험 강화를 골자로 하는 복지개혁을 단행했다.
재정 효율화와 의료비 감축을 위해 공적 보험과 사적 보험의 유기적 협력과 인프라 통합을 통해 새로운 복지 틀을 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더욱 심각한 고령화 위기로 재정난에 봉착해 있지만 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간에 공사 보험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보건복지부는 민영보험의 성장이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불러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는 반면 금융 당국은 신성장동력산업이자 공적 보험을 보완할 보충적 성격으로 보험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질적 시각이 다르다 보니 부처 간 협업이 안 되고 국민건강을 보장하는 한 축으로서의 제대로 된 보험산업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 신성장동력산업으로서의 밑그림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성장·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하며 허덕이는 보험산업이 조타수 없이 헤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당국의 건전성 감독 강화로 영업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여전한 규제의 칼날에 시장 자율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도 말로만 신성장동력산업을 외칠 것이 아니라 보험산업이 커나갈 수 있도록 법규 정비 등 실질적인 인프라 지원책을 마련하고 시장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규제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 시장 창출 위한 협력 인프라 조성해야=보험 정책을 둘러싼 부처 간 엇박자는 한심할 정도다. 연금시장은 그나마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간 통합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부처 간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있지만 건강보장영역은 부처 간 소통의 틀이 없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적 보험이 공적 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공사 보험의 유기적 조합이 국민건강 보장 및 증진을 확대·촉진하고 종국적으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자세로 정부가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사 보험 연계를 통해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 중복 보장을 해소, 국민 의료비를 줄이고 보장내역을 효율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기택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 가구의 78%가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는데 이 중 일부가 공공 건강보험의 보장내역과 중복돼 국민 입장에서는 이중납부의 성격이 있다"며 "이 같은 중복보장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국민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 효율적 연계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 간 협력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보험사들이 100세 시대에 맞춰 다양한 노인질병 보장 등 건강보험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금융 당국은 경쟁제한적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당국은 2000년 보험산업 선진화를 위해 가격자율화를 실시했음에도 행정지도 등을 통한 보험가격 규제 등 구태를 지속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건강보장 신상품은 위험률 등 통계가 미비해 손실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국이 안전 할증률을 높여 실질적인 가격자유화를 유도하고 시장에서 이후 자연스레 경쟁을 통해 상품가격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강보장 수요 촉진을 위해 세제혜택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보장상품의 경우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준다. 하지만 사실상 전 국민이 가입한 자동차보험만도 평균 60만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세제혜택 유인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보험사도 거품경영 등 구태 벗어야=보험사도 고성장 시절 몸에 밴 거품경영 등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고백한다. 당장의 외형 확대를 위해 무리한 저축성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는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사에게 과다하게 지급하는 선취수수료가 불완전판매를 부르고 보험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과다한 저축성보험 판매는 운용수익률이 악화하며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보험업계의 자산성장세는 지속됐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마케팅 등 보험의 본질이 아닌 사업비에서 차익을 챙기는 행태를 접고 보험의 기본인 보장성상품에 주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강호 보험연구원장은 "삼성생명 등 국내 빅3업체는 사업비 차익과 저축성보험 등 외형경쟁에 주력하다 보니 보장성보험의 위험률 차익이 10% 안팎에 그치는 반면 보장성보험에 주력했던 푸르덴셜생명은 30% 안팎의 위험률 차익을 보이고 있다"며 "보험사들은 거품을 걷어내고 보험의 기본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형경쟁을 끝내고 100세 시대에 맞춰 다양한 질병보험·간병보험 등 신건강보장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