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 후폭풍… 중앙아시아 경제 흔든다

러 이민 노동자 본국 송금액 올 최대 100억弗 급감 전망


러시아 루블화 폭락의 영향으로 러시아 경제권에 속하는 중앙아시아 각국이 올해 두자릿수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들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러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세계은행(WB)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루블화 폭락으로 중앙아시아·캅카스 지역 국가에서 러시아로 온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액 감소폭이 지난해보다 최대 100억달러(약 10조7,75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은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캅카스 9개국으로 유입된 송금액이 연간 190억달러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는 루블화 가치를 달러당 40루블로 계산한 것으로 지난해 50% 이상 떨어진 루블화 가치를 적용하면 올해 유입될 송금액은 76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가장 타격이 큰 국가들은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로 가디언은 "올해 내내 루블화 위기가 지속될 경우 이들 국가는 두자릿수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3년 기준 타지키스탄 25.1%, 키르기스스탄 24.8%, 우즈베키스탄 11.7%, 아르메니아 9.1%, 조지아(옛 그루지야) 4.5%에 이른다.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이 크게 줄어들 경우 중앙아시아 국가 내 가정 상당수의 소득이 끊기는 셈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지에서 러시아에 온 이주노동자 수가 대략 500만명이며 이는 정식 이민자들로 불법이민자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산유국인 카자흐스탄은 그나마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카자흐스탄도 러시아와의 무역 비중이 크기 때문에 텡게화 역시 루블화 폭락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평가절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보도했다.

루블화 폭락은 이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과 통화가치 등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메니아의 지난해 대러 수출액은 루블화 폭락으로 6.8% 감소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자국 마나트화 가치를 18.5%나 낮췄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올 들어 두자릿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안은 오히려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더 강화하는 쪽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이들 정부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옛소련 국가들의 경제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에 가입한 키르기스스탄이 대표적이다. 키르기스스탄 정부조차 EEU 가입으로 러시아 시장 진출 등의 기대이익은 적은 반면 실업률은 두 배나 증가하는 등 손해가 크다고 인정했지만 EEU 출범에 따른 관세 등 무역장벽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동맹에 가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이 같은 경제적 부담은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내 중앙아시아 인터넷 매체 페르가나를 운영하는 다닐 키슬로프는 "저유가와 루블화 약세가 이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가 늘 것이며 이는 러시아 송금액에 의존하던 중앙아시아 경제에 부담"이라며 주로 독재정권으로 구성된 이들 국가의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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