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사람과 동물사이 사랑이 있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마음 행동으로 파악"고되고 힘든 일 애정 없인 못해요" 서은영 기자 supia927@sed.co.kr 과천=맹준호 next@sed 기자 next@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관련기사 "원숭이와 친해지려 수염 길렀죠" "경주마가 강아지처럼 따라 다녀요" 사육사들은 억울합니다. 왜냐고요? 간혹 동물원 사육사들이 동물을 학대하며 훈련을 시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들이 펼치는 쇼를 보고 열광합니다. 하지만 이내 동물들이 일사불란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것도 맞으면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경마장의 경주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승했다고 좋아하다가도 ‘저 말들은 무수히 채찍으로 맞으며 훈련 받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동물을 때려가며 훈련시키는 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라는 것을. 사육사들이 정말 동물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면 동물들은 이내 아프거나 훈련에 응하지 않고 사람을 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육사들은 동물의 본능과 행동방식을 관찰하고 그에 맞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동물을 때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죠. 사육사들은 동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합니다. 그런 후에 줄에 매달리기 좋아하는 원숭이는 천장에 매달릴 수 있게 나무를 심어주거나 줄을 매달아 주고, 무리로 줄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오리들에겐 쇼에서 행진 하는 역할을 맡깁니다. 동물의 습성에 맞는 생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먹이를 땅 속에 숨기거나 나무에 걸어 동물의 야성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것도 사육사들의 몫입니다. 사육사들이 하는 일은 먹이주기에서부터 동물쇼 진행, 청소까지 무궁무진합니다. 한 사육사는 자신이 전기ㆍ토목 공사에 까지 능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사육사들은 평생 일하며 배운다고 합니다. 경력이 오래 됐다고 해서 일이 쉬워진다는 보장이 없는 직업이죠. 새로 들어온 동물을 맡게 되면 또 다시 그 동물의 성격과 행동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훈련을 시켜줘야 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 눈엔 텔레비전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육사 일이 쉽고 재미있어 보이나 봅니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요즘 들어 부쩍 사육사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동물을 예뻐해주는 게 사육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사한 사람들은 입사 며칠 만에 그만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동물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며칠 만에 질려서 떠날 만큼 사육사 일이 고되긴 한가 봅니다. 사육사들의 일과는 보통 아침 7시에 시작, 오후 8~9시에나 끝이 납니다. 퇴근을 했어도 동물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면 언제든 달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사육사들 대부분이 직장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주 리빙앤조이는 동물원 사육사, 마필관리사, 말 수의사, 수족관 다이버를 만나봤습니다. 관객들이 구경하는 볼거리 뒤에 그들의 일과 일상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루 13시간 이상 동물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직업이지만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동물은 말을 못한다. 대신 행동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그래서 동물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동물의 행동에서 그 마음을 읽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동물을 돌보는 일은 어렵다.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애정이 뒷받침 돼야만 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동물의 본성이다 보니 보살피는 사람의 몸이 고달픈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리빙앤조이팀이 만난 박용준 에버랜드 사육사, 한득희 63씨월드 다이버, KRA(한국마사회) 경주마보건원 수의사들은 모두 동물이 좋다는 이유로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동물과 함께 하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어떤 삶을 사는 지 들어봤다. ■“하루 하루가 새로워요” “동물의 본능을 살려주려고 노력하는 게 사육사들의 역할입니다. 동물이 아무리 좋아도 거리를 둬야죠. 동물이 사람에게 너무 익숙해져 야성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동물을 위하는 게 아닙니다.” 박용준(29) 에버랜드 사육사는 아픈 동물들과 갓 태어난 동물들을 주로 돌보고 있다. 어리고 약한 동물을 돌보다 보니 ‘야성’에 대한 부분에서 갈등할 때가 많다. “야생 동물들은 어미의 몸이 안 좋거나 새끼가 약할 경우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인공포육 사육사들이 필요한 거죠. 어미를 대신해 새끼를 돌보되,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되죠.” 인공포육 사육사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음식을 먹일 때도 주의해야 할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같은 종이어도 기호를 고려해 줘야 하고 편식을 하는 동물들도 특정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게끔 보충식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식단 짜는 일도 무척 복잡하다. 그런데 그는 대학에서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했다. “대학에선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육사의 꿈을 버리지는 못 했죠. 군대에 가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동물원에 지원했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동물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고된 업무. 그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동물의 행동을 읽어내는 것 이었다. 박 사육사는 “야생 동물들은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파도 티를 잘 안 낸다”며 “동물이 아픈 걸 눈치채지 못해 상황이 악화되면 죄책감이 들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사육사를 완성하는 건 1할의 지식과 9할의 경험이다. 그는 “결국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지켜봐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혀봐야 하는 것 같다”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업무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동물 다루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박 사육사는 “권수완 에버랜드 동물원장 말씀대로 ‘동물은 럭비공 같다’며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게 동물들이다 보니 매일 동물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인공포육 사육사로만 일했던 그에게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한국호랑이 ‘독도’가 사파리에 방사되던 날. 그는 태어나자마자 몸 상태가 안 좋아 생사를 오락가락하던 ‘독도’를 밤낮 없이 돌봤다. ‘독도’가 우유를 잘 먹지 못해, 식으면 다시 데워 먹이기를 수 차례 반복해야 했다. “다들 건강해지긴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기적처럼 ‘독도’ 상태가 좋아진 겁니다. 동물원 사람들 모두가 자기 자식이 살아난 것처럼 기뻐했죠.” 박 사육사는 끝으로 동물원 손님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 먹이도 주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먹던 음식을 주려고 하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음식 하나 때문에 동물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꼭 음식을 주고 싶다면 동물원 곳곳에 비치된 사료 자판기를 이용해 주세요.” ■“마명(馬命)은 재인(在人)입니다” 한눈에 봐도 준수한 경주마들만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KRA(한국마사회) 경주마보건원 소속 수의사들이다. 경주마는 달리는 게 직업. 한 달에 한 번 꼴로 경주에 나서 시속 60㎞ 속도로 전력 질주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경주에 나선 마필 중 평균 15%의 비율로 크고 작은 외상을 입는다. 때문에 수의사들의 일은 끝이 없다. 또 경주마는 소나 돼지 같은 식용 동물이나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과는 달리 근골격계 수술 등 대단히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진료 분야가 많다. 현재 KRA 경주마보건원 소속 수의사 중 임상 부문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는 모두 5명. 서울경마공원에는 1,400개 마방이 있고, 연간 600~700두의 경주마가 은퇴하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 들어온다. 어림잡아 연간 2,000두의 마필에서 발생하는 진료건수가 연간 3만 건에 달하며, 이를 경마장 내 개업 수의사 5명과 경주마보건원 소속 수의사 5명이 모두 진료해야 한다. 양영진 KRA경주마보건원 부장은 “개업수의사가 1차 진료를, 보건원이 2차 진료를 맡고 있는 시스템은 동네병원-종합병원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경주마 치료 중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흔한 치료는 골절 수술이다. 경미한 골절일 경우 관절경을 이용해 떨어진 뼛조각을 빼주는 수술이 가장 많이 시술된다. 수술과 재활을 통해 경주로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는 큰 부상일 경우는 수술하지 않는다. 고통이 심한 경우는 생명 윤리 차원에서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 말의 질병 중 가장 흔하고도 심각한 것이 배앓이의 일종인 산통(疝痛)이다. 장이 꼬이는 병으로 50% 정도는 사망한다. 산통은 특별한 원인 없이 찾아오며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고 개복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손을 쓸 수 없을 때도 있다. 영화 ‘각설탕’에 나온 ‘천둥이’도 올해 이 병으로 급사했다. 양 부장은 “흔히들 마명은 재천(在天)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마명은 재인(在人)이라고 본다”고 했다. 말 못하는 짐승을 진단하는 기술, 또는 적극적인 진료 여부에 따라 살릴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양 부장은 또 “진료 이전에 관리가 더 중요하다”면서 “관리가 없으면 말도 없다(No management, No horse)”라는 격언도 소개했다. 경마장 수의사들의 가장 큰 보람은 뭘까. 임형호 수의사는 “치료한 말이 다시 경주로에 서는 걸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이곳 수의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경주일인 토ㆍ일요일에 쉴 수 없다는 점과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찾는 응급마를 밤샘 진료해야하는 일이다. ■“겨울엔 감기 달고 살아요” “물 속에 있으면 마음도 편안하고 행복해져요. 다이버 일을 하면 스킨스쿠버도 공짜로 할 수 있어서 좋은데 월급까지 받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15년째 63빌딩 수족관 ‘63씨월드’에서 여성 다이버로 일하고 있는 한득희(33) 주임. 그는 하루 4~5차례 씩 바다표범쇼와 인어공주쇼를 진행한다. “인어공주쇼가 진행되는 ‘수조’는 조류가 심한 바다와 비슷한 정도로 물살이 세서 처음엔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바다표범쇼는 더 힘들었어요. 바다표범들이 보기엔 귀엽지만 명색이 ‘바다의 맹수’입니다. 신참 다이버들이 들어가면 딱 알아보고 텃새를 부려요. 밀치기도 하고 손도 물고. 다칠 수도 있으니까 처음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훈련을 해야 했죠.” 그랬던 한 주임도 다이버 생활을 한 지 15년째다 보니 바다표범 다루는 데 있어서는 국내 최고 전문가가 됐다. “바다표범 쇼가 있는 곳은 세계 어딜 가도 없어요. 늘 자부심을 느끼죠.” 다이버 일을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한 주임은 “학창시절 수영선수 생활을 했었는데 졸업을 하면서 그만 두게 됐다”며 “물에서 계속 생활 할 수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수족관 다이버 얘기를 듣고 바로 지원했다”고 답했다. 수영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이나영 주연의 영화 ‘후아유’에서 여성 다이버였던 주인공의 상황과 같다는 말에 한 주임은 “‘후아유’ 감독님이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주인공 컨셉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물은 좋아했지만 동물 애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다표범과 오랜 시간 훈련을 하면서 정이 들었고 요즘은 휴가를 가도 바다표범 생각이 나서 전화로 안부를 물을 정도”로 동물사랑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젠 바다표범들도 제 표정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알죠. 저도 물론 걔네들 움직임 하나만 봐도 그날 컨디션을 알 수 있을 정도고요.” 물에서 계속 일할 수 있고 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에 한 주임은 다이버 일을 시작했지만 다이버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물고기가 사는 수조의 수온을 사람한테 맞출 수는 없잖아요. 여름엔 시원하지만 겨울엔 너무 추워서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아요.” 때문에 그가 꼽는 다이버의 조건은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다. 한 주임은 “하루에 두 사람이 근무를 하는데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 사람들이 고생을 하기 때문에 건강관리는 필수”라고 말했다. 체력 소모가 커 여성에겐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 주임을 15년째 이곳에 머물게 하는 것은 일에 대한 보람이다. “63씨월드는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에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그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한 주임은 “마우스피스를 물고 수경을 쓰고 있으니까 웃고 싶어도 웃을 수도 없고, 표정도 드러나지 않는다”며 “앞으로 수족관에 와서 쇼를 볼 땐 보이진 않아도 수조 속 다이버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입력시간 : 2007/08/01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