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솜방망이 처벌이 탈세 부추긴다

추징금·과태료 내면 그만… '탈세는 경범죄' 인식 키워
통고처분제도 폐지하고 상습범은 형사처벌해야


한국 사회에서 세금 누수가 관행적으로 발생하는 데는 탈세에 대해 관대한 처벌 시스템이 일조하고 있다. 세금을 떼먹어도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추징금과 과태료 등을 내면 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행정처분 위주의 처벌방식은 ‘탈세는 경범죄’라는 인식을 키울 수 있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탈세에 대한 온정적인 처벌은 범죄자의 재범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상습적이거나 죄질이 나쁜 중범죄탈세자의 증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조세ㆍ관세 위반행위로 대검찰청에 접수된 건수를 보면 2000년 122건이던 것이 2010년대 들어 매년 연간 70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04년(257건) 이후 특가범상 조세ㆍ관세위반 접수건수가 급격히 늘었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기간 전체 조세범처벌법 발생건수는 6,000여건에서 3,000여건대로 감소했다.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가법상 조세위반 행위 건수가 조세범처벌법 위반행위 건수와 정반대인 것은 대규모 조세범죄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재정부의 한 간부도 “부가가치세 등을 부정환급 받는 사례를 보면 세법을 잘 알고 허점을 노려 전문적으로 탈세하는 ‘꾼’들의 소행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고철 등을 수집하는 동스크랩 업체의 경우 한 번 세금을 털어먹고 나면 폐업해 숨다가 다시 재범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따라 탈세범 조사와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 죄질이 나쁘거나 상습적인 조세범에 대해서는 반드시 강도 높은 형사처벌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정당국의 조세범칙조사건수는 2003년 172건이던 것이 최근에는 연간 600건 안팎으로 늘었지만 형사고발률은 같은 기간 90%대에서 70%대로 하락했다.

솜방망이 처벌을 고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사법당국 일각에서는 이른바 ‘통고처분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통고처분제도란 세정당국이 세금을 떼어먹는 등의 행위를 한 조세범에 대해 언제까지 어디로 추징세금과 과태료(혹은 벌금) 등을 낼지를 통보하는 제도다. 조세범이 통보내용을 제대로 준수하면 별도의 형사상 절차를 피할 수 있다. 조세범으로서는 세금을 떼어먹고도 돈만 내면 징역살이를 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일제시대 도입된 이 제도는 복잡한 재판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금 추징을 할 수 있다는 행정적 편의성을 장점을 삼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한 만큼 이제는 통고처분제도의 맹점을 수술할 필요성이 있다.

조세범처벌법상 조세포탈죄 요건을 명확히 해 조세범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조세범처벌법은 조세포탈죄의 요건을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범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아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세범이라도 어떤 이는 조세포탈죄로 처벌 받고 어떤 이는 피해갈 소지가 다분하다.

조세범칙사건을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법적 인프라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세청 등은 지방청 단위로 조사범칙조사심의위원회를 둬 조세범죄를 합리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은 내부규정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운영방식이 달라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운영방식을 관련 법령에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해 시비거리를 사전 차단하는 것도 조세범이 빠져나갈 빈틈을 막는 방법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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