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선교사·대기업 사원 대신 '가업 승계' 선택한 소공인 2세들

국가대표 춤꾼 꿈꾸던 김태성씨 부모님 운영 '태성기공' 물려받아
반도체 대기업 다니던 천종철씨 어릴때부터 돕던 아버지 일터로
소공인 2세 문래동 집적지 정착… 작업환경 좋아지고 매출도 쑥쑥
3D업종 고정관념 벗고 희망 키워

문래동 소공인 2세들과 예술 작가들이 지난 12일 저녁 모임을 끝내고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모임을 통해 3D프린터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방안, 문래동 작업환경 개선 등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사진=강광우기자

소공인특화지원센터 제품 전시장.

예술대학에 다니며 비보이를 꿈꿨던 김태성(28)씨는 1년 전부터 부모님이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든 '태성기공'으로 출근한다. 태성기공은 자동차·반도체 등의 부품을 임가공하는 업체다. 김 씨는 서울 문래동 소공인 집적지에 입주해 있는 업체 대부분이 그렇듯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일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가업을 이으려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동화 장비를 들여와 작업이 한결 편해진데다 아버지가 최신 기계를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도움을 주기 위해 태성기공에 몸담게 됐다.

재연기계의 안성모(36)씨는 스무살 때부터 해외 선교활동을 시작해 17년간 아버지와 떨어져 살다가 최근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사업을 물려주려고 기계 박람회를 데리고 다니고 아버지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작업 환경이 열악한데다 선교의 꿈이 커 외면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장인정신으로 문래동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사업장에 출근하게 되면서 아버지 세대는 생각도 못했던 3D프린터 기술을 배우면서 새로운 제작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2일 퇴근길에 문래동 소공인 2세들과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지원사업에 참여 중인 예술가들이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에 모였다. 문래동 소공인 집적지에는 1,300여개 업체들이 모여있지만 아버지 세대들은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비보이와 선교사, 대기업 직원 등 다양한 출신들이 모인 젊은 소공인 2세들은 생각이 다르다. 함께 센터에 있는 3D프린터 등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공동의 사업을 추진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어느새 200여명 가까이 문래동에 자리를 잡은 예술 작가들과도 협업하며 문래동에 새로운 희망을 키우고 있다.

소공인 2세들은 어린 시절부터 문래동 작업장에서 뛰어 놀고 조금 커서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환경에 익숙하기는 했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스런(Dangerous) 3D업종이라고 생각해 선뜻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문래동 단지에도 자동화 기계가 들어오면서 업무의 강도나 위험도가 많이 개선됐고 업체당 연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보수도 좋아 가업을 잇겠다는 2세들이 생겨나고 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8년 전부터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천종철(34)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장을 접했고 일도 도와드렸지만 전자통신과를 나와 우선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었다"며 "대기업 시스템은 적성에도 맞지 않았고 아버지처럼 개인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문래동에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공인 2세들은 작업 현장에서 같은 또래가 적다는 게 어려운 점이라고 말한다. 김성회(33) 경선기계 팀장은 "동종업계 거래처나 문래동 업체들 가운데는 우리 또래가 많지 않아 함께 고민을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며 "자동화 기계를 들여놓는 등 환경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어렵지만 이들은 문래동을 바꾸고 있다. 김 팀장은 "문래동에 들어오면서 이 곳에 누군가가 일을 시작했을 때 떠나고 싶지 않게 하고 싶었다"며 "아버지 세대들은 왜 굳이 환경을 바꾸려고 하냐고 하지만 젊은이들이 하나라도 더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인들과의 협업도 소공인 2세들이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점이다. 예술인 복지재단 파견지원사업을 통해 소공인 2세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 최두수 작가는 "소공인들이 만든 선반 스쿠류를 보고 조형적으로 봤을 때 완벽한 가치를 가진 예술품 같다는 생각에 문래동으로 오게 됐다"며 "소공인 2세들과 함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플랫폼과 제작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업화를 하다 보면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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