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대책이요? 믿을 거 못됩니다.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고 하니까 당분간 투자를 늦출 생각이긴 하지만, 결국 부동산 밖에 없어요.”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달 30일 강남의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찾은 거액 예금주는 담당 PB컨설턴트에게 오히려 `정부를 너무 믿지 말라`는 충고까지 남겼다고 한다. 다수의 PB전문가들이 고객들에게서 이와 비슷한 반응을 읽고 있다. `부동산 투기대책` 의 종합판이 나왔지만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부자`들의 믿음은 전혀 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책이 `부동산 투기억제효과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70%,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83%에 이를 정도로 자산가층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不信)`은 심각하다.
◇`부동산 불패`믿음 여전=정부가 `10ㆍ29 주택시장 안정대책`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지만 자산가층의 부동산 선호도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에도 똑 같은 내용의 설문을 했는데 당시에도 78%가 부동산을 가장 유망한 투자대상으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도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74%가 부동산을 꼽았다. 통계의 유의수준을 감안하면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춘수 조흥은행 재테크 팀장은 “10ㆍ29 대책에 대한 부동산시장의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아 자산가층 고객들도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며 “조금 더 부동산가격흐름을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분간 관망하는 분위기=설문에 응한 100명의 PB컨설턴트 가운데 65명은 `10ㆍ29 대책` 발표 이후 자산가층이 부동산 투자에 어떤 자세를 보이느냐는 질문에 대해 `당분간 투자를 유보하며 관망하는 모습들이다`고 전했다. 부동산투자를 선호하는 재테크패턴은 변화가 없지만 일단 정부가 칼을 빼 든 만큼 잠시 동정을 살펴본 후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자산가층의 일반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가층의 부동산투자자금이 주식시장 등 다른 곳으로 흘러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질문에 `부동산 투자를 중단하거나 포기하려 한다`는 응답은 1%에 불과했고, 다른 10%의 응답자들은 `자산가층이 아파트 외에 다른 부동산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정부의 강경책으로 이들의 투자자금이 잠시 `동면`에 들어갔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대책 가운데 세금중과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PB컨설턴트 응답자의 45%가 `양도세 인상`을 꼽았고 35%가 `주택거래신고제 시행`이라고 답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 인하`라는 응답은 7%에 지나지 않아 정부의 대출억제 정책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산가층 정부정책에 불신은 심각=시간이 갈수록 현정부에 대한 자산가층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한 PB컨설턴트는 `폭발직전`의 상황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실제로 지난 4월설문조사에서 현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산가층의 입장이 `매우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에 불과했지만 7월 조사에서는 27%로, 이번 조사에서는 32%로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에 이번 조사에서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51%의 응답을 더하면 무려 83%의 자산가층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단기예금 선호 추세 뚜렷= 이번 설문에서 자산가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예금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 때문에 예금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유자금을 운영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변수가 `안정성`이라는 응답이 69%였고 `수익성`을 답한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또 자산가층의 예금을 맡기는 기간도 `3개월이상 6개월미만`을 응답한 사람이 42%, `6개월이상 1년 미만`이 32%를 차지했다. 1년 이상 장기로 예금한다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종합하면 자산가층은 연4% 안팎의 이자를 바라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게 아니라 필요시 다른 투자수단(주로 부동산)으로 옮겨 타기 위해 은행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한 PB컨설턴트는 “은행에 5억원을 맡기는 고객이라면 전체 금융자산은 10억원 안팎, 부동산을 포함한 총자산은 최소 30억원은 넘는다고 봐야 한다”며 “일정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예금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