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잦은 출몰 왜구, 한반도 소나무 노렸다

■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강판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소나무로 만든 조선 거북선 임진왜란 때 日안택선 이겨
소나무는 나라 지킨 수호신 조선시대 다양한 사회현상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

경북 울진군 소광리 숲에 있는 금강송‘황장목’ 들이다. 조선은 왕실의 관곽 제작에 꼭 필요한 이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에 ‘황장금표’를 두고 무단 벌목을 금지했었다.

정조 때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거북선 그림.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그러나 이 나무가 한반도를 지키는 수호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곳 어디에서도 소나무가 한반도를 수호한 수문장이었음을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이자'나무인간으로 불리는' 강판권. 그가 주목한 주제는 '한반도의 수호신은 소나무'였다. 저자는 "예부터 한반도 거주민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소나무는 핵심적인 자원으로 활용됐다"고 주장한다. 의식주 어느 분야에서건,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인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였기 때문이다.

보다 놀라운 사실은 소나무가 외적으로부터 한국인의 안위를 지키는 역할까지 수행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역사의 단절을 불러올 뻔했던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군사력을 제압하는 전함이 돼 백척간두에 선 조선의 생명을 지켜낸 것은 바로 소나무였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安宅船) 간의 싸움'이라고 규정한다.

소나무로 만든 거북선과 삼나무로 만든 안택선의 나무 재질에서 승패가 갈렸다는 것이다. 일본 목조 유적의 재료로 흔히 쓰여온 삼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물러 거북선과 안택선이 부딪힐 경우 안택선의 파손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거북선이 3개에 불과 하는 등 병선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 수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의 지략과 더불어 소나무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소나무로 만든 전함에 관심을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던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왜구가 한반도에 나타난 이유 중 하나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왜구들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해안가와 도서 지역에 침입해 많은 것을 노략질해갔는데, 이들의 노획 대상 중에는 소나무도 있었다"며"외딴섬에 정박해 목재로 쓸 소나무를 베어갔을 뿐 아니라, 베어낸 소나무로 그 자리에서 배를 만들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간의 연구들은 왜구의 출몰 양상이나 조선 정부의 대처, 실제 전투 과정 등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출몰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사려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나무라는 자원을 역사 분석의 주요 검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온 그간의 연구 풍토가 낳은 한계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 소나무가 조선의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궁궐의 신축·보수, 사찰의 건립과 목장의 조성 등에서 소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흉년에는 구황식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다 보니 지나친 벌목은 산을 황폐하게 하고 산의 황폐화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15세기 중엽 예종 시대에는 소나무를 벤 자에 대한 처벌 규정과 함께 보호 지역을 구체적으로 내걸 정도였다. 태종 3년(1403)에 송충이로부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송충이잡이에 1만명을 동원했다는 일화는 흥미롭다.

저자는 소나무가 조선의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며, "소나무는 한반도의 수호신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선 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지나온 날들을 이해하는 데 소나무가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데도,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일성은 큰 울림을 자아낸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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