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월급 20%가 세금·연금… 가뜩이나 허무한데 "또…"

■ 다시 본 중산층 가계부… 이래서 화났다
이자 등 비소비지출만 연간 1000만원
연봉 5000만원 받아도 살림살이 빠듯



중소기업에 다니는 A과장의 연봉은 5,000만원을 조금 넘는다. 그는 1년에 세금으로 160만원을 내고 연금과 사회보험으로 각각 135만원 정도 부담한다. 대출이자 110만원, 양가 부모님 용돈 300만원, 교회헌금과 사회단체 기부금 120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비로 남는 돈은 4,000만원 정도다. 생활비에 의료비, 아이 교육비까지 쓰려면 그야말로 빠듯하다.

성난 여론에 떠밀린 정부가 소득세 부담증가 기준선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렸지만 '대한민국 중산층'에 대한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다 중산층 기준도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통계로 잡히는 월급을 받는다 해도 세금 등으로 먼저 빠져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실제 쥐는 것은 80% 남짓이다. 더구나 경기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심리적으로 불안감과 압박감은 심해지고 있다. '경제적 허무감'의 골이 깊어지는 터에 증세논란은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정부가 소득세 기준으로 삼는 통계는 고용노동부의 상용근로자 월평균 임금이지만 일반적으로 가계형편을 가늠하는 것은 통계청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가계동향'이다.

이에 따르면 A과장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산층 가계형편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ㆍ4분기 현재 419만3,000원으로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5,031만1,200원이다. 하지만 세금ㆍ연금ㆍ이자 등으로 빠져나가는 비소비지출은 연간 962만4,000원으로 1,000만원에 육박한다.

비소비지출의 세부항목을 보면 가장 큰 부담은 가구당 이전지출로 31.2%를 차지한다. 부모님 생활비나 각종 경조사비가 여기에 속한다. 이어 ▦조세(16.6%) ▦연금(14.1%) ▦건강보험료를 포함한 사회보험(13.9%) 등 세금ㆍ사회보장비와 ▦이자비용(11.6%) ▦종교ㆍ사회단체 등 비영리단체 이전지출(12.7%)이 빠져나간다.

1ㆍ4분기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은 80만2,000원으로 80만원을 넘어섰다. 금리하락으로 이자비용이 전년 대비 3.3%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연금(5.9%), 사회보험(6.6%), 비경상조세(10.5%) 등이 크게 늘었다. 그나마 소득세가 포함된 경상조세(-0.6%)가 약간 줄었는데 정부가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인상을 추진했다 철회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계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기준으로 2만2,708달러를 기록해 2만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이 중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1인당 개인총처분가능소득ㆍPGDI)은 1만3,150달러로 57.9%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20위 수준이다.

미국(75.3%), 프랑스(67.1%), 독일(66.3%), 일본(63%)과 비교해도 매우 낮으며 다른 나라와 달리 추세적으로도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기업소득이 가계로 환류하지 않으면서 가계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며 "가계소득 둔화는 내수기반을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국내투자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투자로 돌려 가계에 흘러들어가게 하고 이것이 다시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하는데 기업과 가계 간 고리가 약화되면서 가계에 쌓인 돈이 말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이 이날 내놓은 '전세가격 상승이 가계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전세가격이 1% 오르면 민간소비는 장기적으로 0.18%, 단기적으로 0.37%가 각각 감소한다. 전세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소득이 이전되는 거래지만 소득계층 간 소비성향에 차이를 보이고 유동성 제약이 있어 소비에 영향을 준다. 평균 소비성향이 높은 중·저소득층에서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으로 현금이 이전되면서 소비감소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데 전셋값 등 경직성 경비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증세에 대한 여론수렴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복지재원 마련이라는 과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현재 가계형편과 소비위축이라는 큰 그림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것 같다"며 "과감한 규제완화로 기업투자를 끌어내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해 세금이 늘어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증세해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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