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게는 평생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는 게 큰 축복인 것 같아요. 피아노로 칠 수 있는 곡이라면 최대한 많이 연주하고 싶습니다."(손열음)
"평생 음악을, 그리고 피아노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연주자로서 한계에 부닥치더라도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싶어요."(김다솔)
세계적인 젊은 피아니스트 거장 손열음(27ㆍ왼쪽)과 김다솔(24ㆍ오른쪽)이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강원문화재단 후원) 무대에 함께 올랐다. 지난 26일 저녁 한 대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쟝-폴 프넹의 '1930년 파리의 추억'을 환상적인 호흡으로 연주했다. 내달 3일에는 초연 100주년을 맞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두 대의 피아노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지난 27일 오전 알펜시아 컨벤션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전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손열음은 처음 위촉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음악제 주최 측에서 함께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고민했어요. 함께 해도 각자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면서 곡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연주자를 찾아야 했거든요. 그때 다솔이가 생각 나더군요. 그리고 어제 그 판단이 맞았다는 게 증명됐구요. "
손열음과 김다솔은 독일 하노버국립음악대학에서 이스라엘 출신의 아리에 바르디 교수 밑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손열음은 독일로 유학 간 지난 2006년부터 아리에 교수에게서 사사 받고 있지만, 김다솔은 지난 해 지도 교수였던 칼 하인츠 캠멀링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리에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됐다. 이들은 하노버에선 바로 옆집에 살면서 친남매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김다솔은 8년 전 한예종 입학에 앞서 임종필 교수에게서 지도 받으면서 먼 발치에서 봤던 선배 손열음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저는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로 한예종 예비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앨범까지 낸 열음 누나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같았어요."
5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일찌감치 세계적 연주자의 반열에 올랐던 손열음에 비해 김다솔은 늦게 입문했지만 타고난 천재성으로 금새 선배들을 따라 잡은 것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김다솔이 먼저 입을 뗐다. "열음 누나는 작품 하나를 볼 때도 생각하는 범위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작곡가와 작품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곡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까지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음악 스토리를 만들어내거든요."
실제로 지난 봄 국내에서 처음 가진 독주회에서 손열음이 연주할 곡을 직접 고르고, 해설까지 직접 썼던 일화는 유명하다. 뛰어난 테크닉은 물론 무대에서 떨지 않는 배포, 풍부한 독서량 등으로 단순한 연주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가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선배 손열음이 생각하는 김다솔의 장점은 무엇일까. "다솔이의 연주는 '자신만의 성깔'이 있는 것 같아요. 연주를 할 때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고, 같은 곡을 연주해도 다른 연주자와 달리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피아니스트로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연주회 일정이 빡빡한데다 인터뷰도 자주 생기면서 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적어져요. 그러면 에너지가 소비되면서 방향도 틀어지고 타성에 젖을 때도 있거든요.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생명력이 긴 연주자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손열음)
"연주자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자주 느껴요. 연주를 다니면서도 실력이 느는 게 얼마나 힘든지,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구요. 방향을 잃지 않고 잘 갔으면 하는 게 소원이예요."(김다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클래식 팬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