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임진강변 고구려성 답사

戰亂과 역사의 '여울목' 성벽엔 무심한 가을바람만
한탄강과 어울려 절경 연출…中 '동북공정' 이후발길늘어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는 경기북부는 '엠보싱(embossing)' 지형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산을 제외하면 넓은 저지대와 낮은 구릉, 야산이 연달아 펼쳐져 있어 특유의 '올록볼록'한 지형을 이룬다. 높은 산이라고 해도 소요산(536m), 수락산(638), 천덕산(477m), 고왕산(355m) 등 500m 안팎의 산들이 대부분이고, 고대산(832m), 지장봉(877m) 정도라야 근처에 있는 북한산(836), 명성산(923m) 등과 어깨를 겨룰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은 멀리 개성의 송악산(489m)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임진강과 한탄강이 흐르는 강 유역은 지세가 험하기로 유명하다. 신생대 제4기에 분출한 용암이 만들어 놓은 철원·평강의 현무암 지대를 그 이전부터 흐르던 두 강이 지나면서 깎아지른 수직 절벽과 주상절리를 빚어 놓았다. 지질학적으로 이 지역은 서해안에서 원산까지 이어지는 추가령구조곡이 지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위로 솟는 산악지형이 아니라 밑으로 꺼지는 계곡형 지형이란 게 특징이다.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漢灘江)이란 지명 역시 '큰 여울'이라는 우리말에서 따 온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이 일대는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어서 수천년간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남진할 때도 두 강을 건너야 했고, 신라가 남하하는 당나라를 격퇴한 곳도 이 곳 일대다. 뿐만 아니라 북방의 수많은 외적이 한반도를 침략할 때도 반드시 이 강을 거쳤다. 최근에 남북간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이 지역 일대에 남겨진 고구려 유적과 비무장지대 안의 생태자원이 새롭게 조망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터무니없는 '동북공정'에 맞대응하기 위한 학계의 노력과 국민적 관심으로 이 일대 고구려 유적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경기 북부에는 남한내 전체 고구려 유적 92곳중 구리 아차산 보루와 포천 반월산성 등 62곳의 고구려 유적이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냉전시대 '제1 땅굴'이 발견돼 화제가 됐던 임진강가의 작은 포구인 고랑포(연천군 장남면)엔 고구려의 대표적인 요새인 '호로고루(瓠蘆古壘)성'이 우뚝 서 있다.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수직절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동쪽만 흙벽돌 크기의 돌로 10m 높이의 성벽을 쌓았다. 성벽 전체둘레는 401m로 그리 크지 않지만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의 요충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어느 거대 성 못지 않다. '호로고루'란 명칭은 고을을 뜻하는 '호로', 성을 뜻하는 '고루'가 합쳐진 고구려 말이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주변 지역은 물론 임진강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의 임진강을 호로탄(瓠蘆灘)이라 하여 장단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6ㆍ25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가 개성을 지나 문산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하여 이곳에서 강을 건넜다 한다. 고구려 성터라고는 하지만 백제, 신라의 건축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성터에서는 고구려계의 붉은 기와와 신라계 검은 기와가 차례로 나타나고, 백제계의 초기 판축(版築) 기법을 보여주는 진흙벽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이 지역에서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호로고루성(사적 제 467호)과 함께 그 상류에 있는 당포성(468호)과 은대리성(469호)도 임진강변의 대표적인 3대 고구려 성터로 꼽힌다. 세 개의 성 모두 양 측면에 강물을 두르고 한쪽 면만 성벽을 쌓은 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가장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적의 성을 구축한 셈이다. 이들 세 개의 성은 2000~2002년 발굴이후 상당기간 방치돼 오다 지난해 1월 비로소 국가문화재로 지정됐다. 임진강과 한탄강 북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 2㎞에 걸친 광활한 비무장지대가 펼쳐진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세계 유일의 분단지대인 이곳을 평화생태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DMZ연구소의 장승재(52) 대표는 "비무장지대는 전쟁이 만든 비극의 현장이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동식물 생태의 보고(寶庫)가 형성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앞으로 현재의 DMZ(Demiliterized Zone)을 PLZ(Peace Line Zone)로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향토사학자 김민수씨 "고구려·백제·倭는 같은 계통…신라는 달라" "본래 부여와 고구려, 백제, 왜는 같은 계통이지만 신라는 전혀 다른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향토사학자 김민수(60ㆍ사진)씨의 주장이다.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에서 흔히 '산신령'으로 통하는 그는 발생학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 있던 많은 고대 국가들은 황하 동쪽에서 기원했지만 신라는 멀리 알타이 초원에서 유래해 시베리아 초원을 돌아 왔다고 강조한다. 신라에서만 발견되는 알타이계통의 금관과 왜까지 이어지는 고조선의 '팔조법금'이 신라에는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또 중국 남북조시대때 그림인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보이는 삼국의 사신중 신라만 유독 깃털관과 상투를 틀지 않은 민머리 모습이란 점도 추가되는 이유다. 그는 "신라의 초기 왕들은 유전학적으로 곱슬머리가 많았다"면서 "이제 단일민족설이나 한반도 문화의 독자성등의 주장은 깨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남방식과 북방식 고인돌 문화나 걸레, 흘레, 얼레 등 부여계통의 고어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는 사실 등은 한반도가 여러 민족의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용광로였음을 반영한다. 또 "신라의 삼국통일이후 발해가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를 '남북조 시대'로 본다"는 그는 "다만 신라가 당나라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한탄강과 임진강을 경계로 분연히 맞서 싸웠다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여행메모 #찾아 가는 길=파주서 37번 국도를 타거나 의정부서 3번 국도를 타면 한탄강 유원지(한탄강역)에 도착할 수 있고 이를 기점으로 연천군일대 3개의 고구려성을 돌아 볼 수 있다. 의정부역에서 50분 간격으로 신탄리역까지 가는 경원선 완행열차가 다닌다. #숙박 및 식당= 한탄강 유원지는 현재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한창이며, 근처에 한탄강관광호텔(031-832-8091) 등 몇몇 숙박시설이 있고, 숭의전 근처에 고려가든(031-835-5464)과 몇개의 식당이 있다. #근처 볼거리= 전곡리에 한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있으며, 근처에 고려태조 왕건과 신숭겸등 16공신을 모신 숭의전(사진), 경주를 벗어나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인 경순왕릉 등이 있다. 제1땅굴이 발견된 상승OP외에 태풍 전망대, 열쇠전망대 등에서는 DMZ 안을 살펴볼 수 있다. 양주시의 최근 복원된 무호정(031-864-0804)에서 국궁체험도 할 수 있다. DMZ관광(02-706-4851~2)에서 '고구려재발견과 DMZ대탐방' 등의 체험상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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