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성 또 정면충돌하나...

한국 재계의 양대 공룡인 두 그룹은 그동안 자신이 하지못하는 최악의 경우 상대방조차 하지못하도록 재를 뿌릴 정도로 라이벌 의식을 감추지 않아왔다.지난 96년 개인휴대통신(PCS)사업 진출 추진 당시 두 그룹이 손을 잡고 「에버넷」이란 회사를 설립한 것도 서로 상대방의 단독 진출을 우려한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일 정도다. 두 그룹의 해묵은 라이벌 의식이 확연히 노출된 것은 지난 94년 7월 한국비료 입찰 때. 당시 인수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않던 현대그룹 방계회사 ㈜금강이 난데없이 한국비료 2차 입찰에 참여했다. 한국비료 인수에 가장 강한 의지를 내보였던 삼성그룹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한국비료는 당초 삼성 창업자 고(故)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중화학공업에 뜻을 품고 의욕적으로 건설하다가 소위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66년 9월 국가에 헌납한 회사.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은 뿌리찾기 차원에서 한비 입찰에 참여했고 반드시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집착을 보였었다. 삼성은 결국 내정가(1,300억원)보다 1,000억원이 더 많은 2,300억원을 써내야 했다. ㈜금강의 돌출적인 입찰참여로 삼성이 당초 계획보다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현대의 「삼성 물먹이기」에 삼성이 당했다는 추론이다. 이에 앞서 지난 92년 11월 현대종합상사는 국내 최초로 80억달러 수출의 탑 수상신청을 냈다가 자진철회했다. 관세청을 비롯한 관련부처에 현대의 실적이 과다계상되고 관세포탈 혐의도 짙다는 내용의 투서가 들어가 鄭명예회장이 대선출마를 준비하던 미묘한 시점까지 겹친 때문이었다. 현대측은 당시 삼성이 과다계상 문제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입찰에서는 상황이 반대로 전개됐다.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진출한 자동차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삼성은 기아자동차 인수를 강력히 추진했으나 결과는 막판 인수전에 뛰어든 현대가 기아를 넘겨받았던 것. 한국중공업은 당사자만 바뀌었을뿐 한국비료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중공업의 뿌리가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세운 현대양행이다. 현대양행은 80년 신군부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우에 인수됐다가 다시 정부로 넘어가 한국전력·산업은행·외환은행의 출자를 통해 한국중공업으로 변신했다. 현대는 지난 96년 사옥 반환소송을 통해 한중사옥(현 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옥)을 넘겨받았고 이번에는 아예 한국중공업을 인수, 빼앗긴 영토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공식으로 밝혔다. 문제는 이같은 한중의 역사와 현대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삼성중공업도 최근 「한중인수의 적임자는 삼성」이라며 한중입찰을 공식 선언하고 나선 것. 「최선은 우리가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으로 상대방(현대 또는 삼성)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속셈을 감추지 않는 두 그룹의 한중 인수전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되고 있다. 정승량기자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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