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벼농사가 대풍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우쭐대던 허수아비의 어깨도 쉴 양으로 땅 위에 눕고 한 일생을 마감한다.그래도 제딴에는 풍년에 한몫을 했으리라고 여길 텐데, 농부의 마음은 벼 수매가와 밀린 비료값을 따져보느라 허수아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공해나 농약으로 찌든 땅에 새떼들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기 힘들지만 그나마 약을대로 약은 놈들이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허수아비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농부의 할아버지 또 그위의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허수의 집안내력 때문에 그저 재미삼아 한두 개 엮어놓은 것 같은데 그래도 허수아비는 이 들판에 제가 꼭 필요한 존재인 줄 알고 두눈 부릅뜨며 벼이삭을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얼마전 허수아비 축제가 군산에서 열렸다.
무슨무슨 아가씨를 뽑는 다른 고장의 규격화된 축제보다 훨씬 신선해 보인다. 비록 TV를 통해서 지켜본 내용이지만 노란 들녘에 서 있는 여러 모양의 허수아비 얼굴을 지켜보자니 그 표정들이 재미있다. 원래 허수아비는 눈이 크고 입은 귀밑까지 쫙 찢어져 날짐승들이 보면 기가 질려 도망가도록 만들어놓는다.
날짐승들이 그런 표정까지 읽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축제라고 등장한 허수아비들의 표정은 사뭇 흥겨워 보인다. 어차피 평생을 볼썽사나운 한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허수아비가 오늘만큼은 탁주사발 하나 놓고 위문잔치라도 받는 모양이다.
요즈음 바쁜 사람들의 얼굴에서 허수아비의 얼굴을 본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국민의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지어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젊게 보여야 하고, 어떤 이는 부드럽게 보여야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 어느 대통령과 닮았다고 하여 항상 근엄하다.
안쓰럽다는 생각도 가져보지만 그 또한 지도자의 덕목이려니 생각하면 나쁠것도 없다. 다만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로 끝내야지 허수아비가 이삭을 탐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