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인사난맥상이 도를 넘어섰다. 상습적인 탈세 의혹을 받아온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수년간 해외 비자금 계좌를 운용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25일 사퇴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발벗고 나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인데 경위야 어떻든 해외에 자산을 은닉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 정부에서 일할 최소한의 자격조차 없다.
한 내정자는 진작부터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끝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로펌에서 근무한 경력과 과거 행적을 보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 적임자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중소기업과 중소상인들이 그의 로펌시절 행적을 문제 삼아 임명철회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을까 싶다.
한 내정자의 사퇴로 박 대통령이 고른 인사 가운데 중도 하차한 고위직만도 벌써 6명이다. 청와대 참모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실패한 인사의 사례는 10명을 훌쩍 넘는다. 최근 일주일 동안 3명이 낙마했다. 실패 차원을 넘어 가히 인사참극 수준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인사 시스템 개선과 더불어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제도개선은 물론 필요하며 관계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달밖에 안 된 시점에 여당 수뇌부가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방증이다.
고위직 인사의 잇따른 낙마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서 총장은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했지만 집권당 사무총장이 사과할 이유도 없고 그것으로 끝날 사안도 아니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지만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눈여겨본 인물을 찍어놓고 인사검증은 한낱 절차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사가 만사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라도 청와대가 인사참극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