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실리콘밸리 사이의 갈등에는 경제 주도권 싸움 외에도 문화적 충돌도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럽은 독일 나치 치하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남아 있어 사생활 보호에 극도로 민감한 반면 미국은 제품 경쟁력 향상과 시장 효율만 중시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실리콘밸리 기업 때리기에 미국 내 반응은 비난이 대다수다. 조지아 공대의 비벡 고살 경제학부 교수는 "유럽은 왜 더 좋은 서비스를 규제하나"라며 반문한 뒤 "새로운 가면을 둘러쓴 보호주의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유럽의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쟁력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이유를 유럽 내부 문제로 돌리고 있다. 세금과 고용 규정이 까다로운 데다 금융 시스템도 은행 대출 위주여서 벤처 캐피털이 발달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태 이후 유럽인들의 불신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실리콘밸리 업체들이 미국이라는 '빅 브라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유럽의 칼날이 NSA에 가장 온순하게 협조한 구글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텔레그라프는 "구글은 주거지 등 수 억명의 소비자 정보를 모으면서 어디에 저장하고 쓰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유럽인들이 나치 정권하의 정치 경찰인 게슈타포, 동독 시절 비밀 경찰인 슈타지를 겪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인정보에 더 민감한 유럽의 우려를 등한시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나라의 불신감이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는 만큼 미국 기업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미 중소 클라우드 서비스(인터넷 데이터 저장 서비스) 업체의 경우 NSA 파문 이후 3년간 최대 450억 달러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