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먹구름과 외채 증가(동남아 금융위기)

◎수출난따른 경상적자 ‘눈덩이’/금리인상 등 응급조치 동원 역부족/인프라 보완·산업구조 고도화 필요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의 통화 폭락세가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해소됐다고 믿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폭락세를 부추겼던 요인들이 여전히 잠복하고 있어 언제 재연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남아 각국의 외환위기는 부진한 수출에 따른 경상적자확대, 성장률둔화 등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국가 정부는 금리인상, 중앙은행 개입등 응급조치로 불끄기에 나서고있으나 역부족을 실감하고있다. 최근 동남아 외환위기의 본질은 경상적자가 급격히 확대된데서 찾아야된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각국 정부가 금리인상, 중앙은행 개입 등 전통적인 응급조치를 취하지만 역부족을 느끼는 것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는데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수지방어가 불안한 국가는 외환투기꾼의 희생양이 되어온 것이 국제금융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경상수지가 악화될 경우 해당국의 통화당국은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라는 궁지에 내몰린다. 이는 외환투기꾼들에게 한탕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94년 멕시코통화위기가 그 대표적 사례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싱가포르 다음으로 탄탄한 실물경제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은 지난 94년 6.2%에서 95년에는 무려 9%로 상승,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기준인 6%를 훨씬 웃도는 위험수준이다. 2백45억달러의 경상적자를 기록한 지난 96년 해외 핫머니가 엄습해와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가는 투매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 10%대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지속해온 동남아 국가들의 성장률은 최근 7%대로 내려앉았다. 여기에는 수출부진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허약한 제조업 기반으로 인해 수출드라이브정책이 한계에 부딪친데다 중국, 베트남 등 후발국의 강력한 도전에 밀리고 있는 것. 지난 95년 24.7%의 신장을 보였던 태국의 수출은 지난해 1% 증가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한자릿수 증가에 머무르고 있다. 신발, 의류 등 노동집약적 수출주력산업이 임금급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한데다 자동차, 석유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술수준이 아직 턱없이 낮은 탓이다. 필리핀도 1·4분기중 수출이 54억2천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 늘어났지만 전력난을 비롯 도로, 항만, 통신인프라 부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성장률은 지난 95년 8.1%를 고비로 올해는 7%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수출전선이 먹구름에 휩싸이자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태국은 무역적자가 지난 95년 1백49억달러를 기록한 후 96년에는 1백72억달러로 늘어났다. 올해는 당초 1백76억달러 적자를 예상했지만 최근 수출부진으로 적자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자릿수 수출신장률이 이어지고 있는 필리핀도 올해 1·4분기 이미 27억달러의 무역수지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자본재수입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여 무역적자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상적자 확대는 이를 메우기 위한 외채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말 외채규모가 5백억달러였던 태국은 불과 6개월만인 지난 6월말 6백억달러를 넘어섰고 인도네시아는 1천억달러대의 총외채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자본으로 일으킨 경제성장의 허상이 이들 나라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문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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