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이 만개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하나 둘 떨어지고 푸르름이 지천으로 퍼져가는 계절. 얼어붙은 경기만 되살아나면 그만일 텐데 계속되는 불황으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은 겨우내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희망을 노래하는 기업들이 있다. 흡사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려주는 전령들처럼 품질 하나로 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기업들이다.
충북 음성의 금화전선은 건설경기 침체로 전선업계 전반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나홀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이다. 선제적인 설비투자와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주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대목은 품질개선을 위한 고민의 흔적들. 생산공정 요소요소에 숨어있는 품질개선 노력은 금화전선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한국전력에 고압케이블을 납품하는 이 회사는 전선 내부에 스며드는 미세한 수분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일반 전선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극미량의 수분도 고압의 전력케이블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습한 여름철과 건조한 겨울철의 품질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수백억원이 투입된 생산설비가 무용지물로 전락할 처지였다. 고심 끝에 찾아낸 해법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금화전선은 제습기와 히터 1대씩을 설치했다. 전력선이 피막에 쌓이기 이전 공정을 최대한 건조한 환경으로 만드는 조치였다. 아울러 전력선을 예열해 구간별 온도차로 인한 수증기의 맺힘 현상을 줄여보자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수분으로 인한 불량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한국전력으로부터 품질 최우수등급 인증도 획득할 수 있었다. 해법은 단순했지만 품질개선을 위한 임직원들의 굳건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한국본산도 마찬가지다. 발전소나 정유공장 같은 대형플랜트에 사용되는 자동제어밸브는 독일이나 일본기업도 자국 이외에는 시장진입이 불가능할 정도. 미국과 영국의 5개 기업만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시장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이를 테스트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상태였다. 한국본산은 실제 정유공장과 유사한 테스트 설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현재 활용하고 있는 설비만도 5억원 가량이 투입됐다. 설립 이래 5번째 모델이다. 국가기관에나 있을법한 테스트설비를 구축하면서까지 품질개선에 힘써온 한국본산은 핵 협상이 타결된 이후 이란에서만 100억원 규모의 수출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다. /안광석 서울경제비즈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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