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 배후에 ‘친(親)러시아냐, 친유럽이냐’라는 국가적 갈등이 자리하기에 해결을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약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위 사태는 지난해 11월 말 정부가 유럽연합(EU)과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한 번에 수십만명이 참여하기도 한 시위는 지난달 말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격화됐지만, 지난 14일 정부가 체포된 야권인사 전원을 석방하고 시위대도 일부 관청 점거를 해제하면서 본격적인 협상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야권이 대통령 권한 축소를 핵심으로 한 개헌을 추진하고 이를 지지하는 2만여명의 시위대가 18일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자 정부는 강력 진압에 나섰고 결국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사태 악화의 바탕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가까워져야 하는지 유럽과 가까워하는지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드네르프강을 경계로 친러 성향의 동부와 친유럽 성향의 서부가 대립해 왔다.
러시아와 접한 동부는 러시아어가 통용되며 러시아계 주민도 상당하다.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동부 도네츠크 출신이다.
반면 서부는 대부분 주민이 우크라이나계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자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러시아보다 유럽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분열 양상은 그동안 선거에도 극명하게 반영됐으며 지금까지 대선에서는 대체로 친서방 후보와 친러 후보가 번갈아 당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를 서로 자신들과 더 가깝게 하려는 러시아와 유럽의 움직임도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을 키우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유혈사태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17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20억 달러(2조1,000억원)의 자금을 이번 주 내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약속한 150억 달러 원조의 한 부분이었지만 이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의 국제문제 전문 블로거 막스 피셔는 분석했다.
또 같은 날 우크라이나 야권 지도자들은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다.
이 역시 특별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야권이 여전히 유럽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고 피셔는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뒤에도 유럽연합(EU)은 정부와 야권 모두의 자제를 촉구한 반면, 러시아는 유럽의 정치인들이 극단주의 세력을 부추겼다며 서방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