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월26일, 전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영국 베어링금융그룹이 도산했기 때문이다. 233년 전통을 가진 베어링브러더스은행을 비롯, 증권사와 투자신탁 등 계열사가 모두 망했다.
붕괴의 시발점은 단순 착오. 1992년 7월 베어링증권 싱가포르 지사의 신참 딜러가 고객의 선물계약 ‘사자’ 주문을 팔아버리는 실수를 저질러 2만파운드의 손실이 생겼다. 지사의 선물ㆍ옵션 책임자인 닉 리슨은 부하직원의 실수를 에러(error) 계좌에 감췄다. 금액이 만만치 않아 팀장 자격이 박탈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닉한 손실은 날로 불어났다. 고교를 마치자마자 지방은행에서 전표를 나르는 단순업무로 시작했지만 어깨너머 익힌 업무지식으로 26세에 선물팀장을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던 닉은 베팅 금액을 오히려 늘려나갔다.
판돈을 두 배씩 올리면 언젠가는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닉은 선물과 현물ㆍ대차대조표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딜러는 자신뿐이라는 환상에 빠졌다. 손실은 감추고 이익만 보고하는 방식으로 베어링그룹 전체 순이익의 20%를 올리는 성과를 낸 적도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은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파국의 순간까지 닉이 까먹은 돈은 3억파운드. 그룹이 입은 전체 피해는 7억파운드에 달했다. 2만파운드의 부실이 수만배로 불어나는 데는 2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제금융자본이 내부통제와 감독강화에 사활을 걸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망해버린 베어링은 네덜란드 ING그룹에 단 1달러의 가격으로 넘어갔다. 한때 ‘영국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러시아에 이은 유럽의 6번째 강국’으로 평가받던 베어링 최후의 날이 꼭 10년 전이다.
/권홍우ㆍ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