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퇴출은행을 인수한 5개 시중은행이 퇴출은행에서 가져갔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여신을 정부에 떠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여 물의를 빚고 있다.워크아웃 여신이 정부 산하의 성업공사로 넘어갈 경우, 사실상 부실여신으로 간주돼 해당 기업들은 극심한 빚독촉에 내몰리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은행이 「워크아웃 여신 떠넘기기」에 성공할 경우, 「회생 가능한 기업을 채권단이 함께 살려보자」던 워크아웃 프로그램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게 돼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21일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최근 5개 인수은행의 풋백옵션(부실자산에 대한 손실보전)을 접수받은 결과,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워크아웃 여신을 성업공사에 매각하겠다며 평가손을 보전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워크아웃 여신은 성업공사의 인수대상 채권이 아닌데도 이들이 매각을 고집하는 것은 「해당 기업이야 죽건 말건 내몫만 챙기자」는 것으로,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에 다름아니다』며 『정밀실사를 통해 인수 이후 나타난 부실화에 은행측의 책임이 드러날 경우 관계자를 문책할 것』이라고 말했다. 5개 인수은행이 퇴출은행으로부터 넘겨받은 자산(24조7,205억원) 가운데 9,000억원 규모가 워크아웃 업체에 대한 여신이다.
성업공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인수하는 채권은 고정이하 또는 회수의문 등 악성채권에 한정되어 있다. 예금공사와 인수은행들은 워크아웃 여신을 악성채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성업공사가 이들 채권을 낮은 가격에 인수하면 예금공사가 은행측에 평가손을 보전해주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동화·경기·충청·동남·대동은행을 각각 신한·한미·하나·주택·국민은행에 넘기면서 이들 은행 인수자산에 추가부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풋백옵션 청구권을 주었다. ★표참조
그러나 상당수 은행이 인수자산을 제대로 관리하기보다는 정부에 풋백옵션을 청구하는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금융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일부 은행은 풋백옵션 청구 시점에 맞추어 인수자산을 빨리 부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기색이 역력하다』면서 『예금공사가 책임자들의 명단을 통보해오면 이들을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일부 인수은행이 과거 퇴출은행과 거래하던 기업에 만기연장을 불허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출자산을 고의로 부실화시킨 증거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그릇된 경영을 일삼다 외환위기까지 촉발시켰으면서도 아직껏 모럴 해저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 『5개 은행의 인수자산 가운데 10%만 풋백옵션으로 나가도 2조4,000억원이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공적자금의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한상복 기자 SBHAN@ 신경립 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