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당초 2월 초, 늦어도 설 연휴가 시작되는 18일 이전에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을 결정하고 집권 3년 차 국정운영에 속도를 낼 계획이었지만 이병기 비서실장 인선은 27일에야 발표됐다.
3월1일부터 시작되는 4개국 중동 순방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경우 청와대 업무는 비서실장이 책임져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급박하게 인선이 이뤄진 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가 10여명 이상의 후보군을 만들어 비서실장 자리를 제안했지만 여러 명이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격무를 견뎌내야 하고 앞으로 노동시장 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를 풀어야 하는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청와대는 친박 비서형, 경제통, 정무형, 국민통합형 등 몇 개의 범주를 정해놓고 후보군을 선정해 인물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한덕수 전 총리,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명재 민정특보 등 비서실장 자리를 제안 받은 상당수 인물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기 내정자도 이날 언제 내정을 통보 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번 사양했다"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라고 답했다. 비서실장 자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청와대와 국회에서는 김 실장 후임으로 현명관 마사회 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내정'이라는 속보를 올리기도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현 회장 내정을 통보 받은 새누리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며 "이 같은 새누리당의 분위기와 입장을 전해 들은 청와대가 오후에 후보자를 교체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비선라인 실세 논란에 휩싸였던 정윤회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 선정과 관련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2010년 치러진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현 회장의 친동생이 금품을 살포했다는 의혹으로 당시 한나라당이 공천을 박탈한 사건, 2013년 마사회장 낙하산 인사 논란 등에 대해 새누리당이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정윤회 문건유출 의혹으로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국정운영 지지율도 급락했던 뼈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며 "정윤회씨 딸 사건이 마사회와 다시 연결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후보자를 교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