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음양이 서로 끌어당기며 또 분별하고 있는 와중에 사암(寺庵)들이 요소요소에 부끄러운듯 숨어 있으니 금강산의 웅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실로 현지에 가보지 않고도 누워서 산을 즐길 수 있으니 시간이 부족하고 발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깊이 있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겸재 정선(1676~1759)의 걸작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의 세계가 그렇다는 얘기이다. 최완수(57)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몸과 마음을 다해 펴낸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은 독특하면서도 심오한 전통예술기행의 한자락을 펼쳐준다. 책의 구성은 겸재가 50여년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금강산 그림 61점을 통해 금강산에 대한 미학적 해석은 물론 진경산수화라는 특유의 화법을 그 철학적 배경과 민족사적 의미에 실어 전해준다. 우선 저자는 진경산수라는 예술양식과 겸재의 탄생을 사상사적 배경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름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금강(金剛)은 불교 그중에서도 화염경의 진정한 배경이었음을 저자는 설파한다. 송·원나라 대 중국사람들이 『원컨데 고려국에 나서 금강산을 직접 볼 수 있게 하소서」(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하고 금강산 보기를 소원했다는 사실이 단지 금강산의 수려한 면모를 강조하는데만 이용되어 왔는데, 사실은 금강산이 불교 화엄종의 성지였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를 기본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등장하면서 금강산은 잠시 지식인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다가 이이(李耳)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주자성리학을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심화발전시키면서 금강산은 다시 음과 양의 조화를 주장하는 성리학의 이념에 부합되는 산으로 큰 관심을 모으게 됐다.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겸재의 진경산수가 탄생했다. 빼어난 산과 바다가 음양의 이상적 결합으로 조화된 금강산은 비단 유학자들 뿐만 아니라 한 뛰어난 천재화가의 마음을 일평생 움직이는 동반자가 되었던 것. 최완수 연구실장은 머리말에서 『독자들과 함께하는 긴 그림여행의 길라잡이가 되어 겸재가 살던 시기의 문화적 자존의식을 속속들이 눈으로 확인하면서 지금도 우리가 이를 회복하여 공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실히 얻게되었다』고 말한다. 겸재가 서울에서 출발해 사생 답사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 여행길은 영평 화적연, 철원 삼부연을 거쳐 금성 피금정을 지나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바라본 다음 장안사를 거쳐 내금강을 두루 살피고 안문재를 넘어 외금강으로 해서 고성 해금강을 보고 관동팔경에 오르게 된다. 물론 독자들은 그 곳의 물성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당대의 사상과 심오한 사색 그리고 대유(大儒)들과의 교류를 함께 하고 무엇보다 진경산수의 참모습과 만나는 아주 유쾌하면서도 유익한 여행길인 것이다. 대원사 펴냄. 이용웅기자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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