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살아날까

지난 달 말,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 실적에 따르면 수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20.4% 증가한 141.6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회복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이후 내수 소비가 부진의 늪에 빠져들고 있고 주식시장 마저 약세를 보이면서 '어쩌면 불황이 시작된 게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우려마저 대두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주식시장이 '수출회복'에 환호하지 않았던 것은 다음 두 가지 요인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이자, 가장 기술적인 요인은 비교대상이 되는 2001년 여름의 수출이 워낙 부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수출규모는 117억7,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2000년 8월에 비교하면 무려 21.2%나 줄어든 처참한 수준이었다. 결국 올해 8월 141억달러의 수출규모는 2000년 8월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 된다. 더욱이 일 평균 수출규모는 5억8,000만달러로 지난 6월의 6억달러에 여전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6월은 월드컵과 파업의 영향으로 생산현장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 평균 수출 규모의 상승세 둔화는 현재 수출기조에 대한 의문을 품기에 충분한 악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이 수출회복에 대해 둔감했던 두 번째 이유는 수출의 선행 지표들이 둔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지난 주에 발표된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가격지불지수의 급락은 한국의 수출전망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10여년 동안의 추세를 비교해보면 ISM 가격지불지수가 한국의 수출에 대해 길게는 1년, 짧게는 1~2개월 선행해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미국의 경제지표가 한국의 수출을 정확하게 예상한다는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ISM 제조업 지수는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지표이기 때문에 변동성이 크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월가에서는 이를 '네이팜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ISM 가격지불지수는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를 표시하는 지표로써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가격을 인상하고 있음을, 반대로 50을 하회하면 가격이 인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ISM 가격지불지수가 지난 7월의 68.3에서 8월 61.5로 크게 떨어진 것은 미국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인 '가격인상'을 단행할 만큼 굳건한 수요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주요 해외의 주문처의 입장에서는 미국기업으로부터 가격인하의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미국쪽의 수요감퇴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요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출전망이 아주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고정돼 있어 중국상품과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시장 수요 회복의 효과는 제약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8월 한 달의 데이터만으로 수출회복을 이야기하기 어려우며, ISM 가격지불지수와 같은 중요한 수출의 선행 지표들이 회복될 때까지 낙관론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홍춘욱 한화투신운용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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