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협의회(MPR)의 23일 탄핵안 가결로 결국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된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집권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조달청 공금횡령과 브루나이 국왕 기부금 증발 등 2건의 금융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끝에 집권후 21개월만에 권좌에서 축출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됐다.
그는 집권 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약한 점을 감안해 각계 정파 인사로 구성된 문민정부 1기 행정부를 발족, 인도네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32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른 수하르토 일가와 측근들의 사법처리와 부정축재 재산 환수, 각종 인권유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의지를 천명해 국내외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당 허용 방침 등 주요 정책의 실정(失政)과 함께 대통령궁 전속 안마사가 조달청 공금 350억루피아(한화 약 44억원)을 횡령한 '블록 게이트'와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의 기부금 200만달러를 챙긴 이른바 '브루나이 게이트'가 불거지면서부터 와히드는 본격적인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부터 의회의 소환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 1월 국회 특별진상조사특위가 2건의 금융스캔들에 와히드 대통령이 연루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지난 2월부터는 탄핵절차 개시를 위한 수순밟기가 시작됐다. 와히드 대통령은 국회(DPR)와 국민협의회(MPR)의 활동을 정지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한다는 포고령을 선포하고 지지파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으나 결국 탄핵이라는 정치적 대세와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운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