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여간 일본 경제에 대한 외부 세계의 시각은 경외에서 당혹감으로, 그리고 무관심으로 바뀌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근심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지구촌의 경제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의 어려움은 한층 가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제는 또다시 침체(recession) 국면을 맞고 있다. 이는 국내 물가의 단순한 하락 차원보다는 물가 하락 기조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3년 이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6% 떨어졌다. 이중 올들어 지난 2ㆍ4분기까지의 하락폭은 2.2%에 달한다. 가장 큰 위협은 갈수록 물가 하락률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가의 하락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실질금리는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현재 일본의 단기금리는 제로에 가깝고 장기금리는 2% 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물가가 여전히 내려가고 있다는 점은 미국ㆍ일본의 경제가 우려할 만한 상황임에도 실질금리가 훨씬 높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버블 경제에서 파생된 방대한 채무와 과중한 부실채권의 부담은 대규모 부도, 금융 위축, 그리고 침체의 악순환을 낳게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가운데 실질금리가 치솟고 재정적자가 커짐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공공부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중기적으로 보면 구조개혁과 부실채권 정리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급선무는 심화되는 디플레이션을 잡는 일이다.
일본은행(BOJ)이 이와 같은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중앙은행의 임무와는 명백히 상치되는 일이지만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추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구조개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선 순위는 디플레이션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둬야 한다.
BOJ는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BOJ가 통화정책 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공개시장 정책을 통한 국채 및 국내외 자산 매입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BOJ는 일본 정부와 좀더 과감한 정책 선택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정책은 기대하는 수준으로 물가를 올리는 방법의 하나로 엔화의 평가절하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은 물론 유럽ㆍ아시아 국가들의 묵인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이들 국가는 이를 거부하려는 유혹을 느끼겠지만 이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 약한 엔은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치뤄야 할 비용인 셈이다.
더욱 공세적이고 특단의 통화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끝내는 것이 일본에 필요한 조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나머지 것들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디플레이션에 의한 악순환을 멈추게 해야 하는 만큼 이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제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사활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BOJ와 협의를 벌이거나 BOJ로 하여금 이 문제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 11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