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노벨상의 계절과 연구풍토

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 노벨상의 계절이 실망스럽게 지나갔다. 해마다 노벨상 발표 때가 되면 혹시나 하고 기대해 보지만 역시나 하고 끝난다. 혹시나 하는 것이 욕심인지 모른다. 꽃이 피려면 씨앗을 심고 정성들여 가꿔야 하는데 아직 싹 틀 씨앗도 없는데 열매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인구나 국력으로 보면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서양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동양에서도 많이 나온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도 인도사람이 받았다. 빈곤과 기아문제로 노벨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 교수는 인도사람인데 연구 활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했다. 한국사람중에서도 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므로 그쪽에 기대해 봄직하다. 노벨상은 기초적 독창성에 가장 비중을 둔다. 독창성의 계발이란 면에서 동양이 아무래도 뒤떨어지는데 그것은 동양사회의 전통중시 문화와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몇년전 노벨의학상을 받은 도네가와 (利根川進) 박사도 일본사람이지만 연구활동은 스위스와 미국에서 했다. 도네가와 박사는 노벨상 수상후 일본의 학문 풍토가 너무 갑갑하다며 만약 일본에서 계속 있었다면 노벨상을 탈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물리학에 3명, 문학에 2명, 의학, 화학, 평화에 각 1명씩 모두 8명의 수상자를 냈는데 수상자의 대부분이 귄위있다는 동경(東京)대학이 아니라 학풍이 자유로운 경도(京都)대학에서 나온 것이 흥미롭다. 수학 부문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드상도 일본에서 2명이나 받았다. 노벨상 중에서 문학이나 평화상은 정치적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佐藤榮作)수상의 경우 많은 사전 준비와 로비를 한 기록이 나온다. 한반도는 지금 세계 유일의 분단대치국이므로 만약 남북한 통일이나 평화적 공존의 확실한 틀을 마련한다면 노벨평화상이 돌아올지 모른다. 그것은 매우 정치적 행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흔히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받을만한 수준이 됐지만 좋은 번역가가 없어 상을 놓치고 있다는 말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한국사람이 노벨상을 탄다면 분야는 기초과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노벨상을 받을 확실한 길은 대학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벌써 포항공대 캠퍼스엔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좌상을 세우려고 빈 좌대를 여러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선 독창적 기초학문 연구보다도 바깥일들에 관심을 더 쏟고 있는 것 같다. 나라와 사회가 어지러우니 그냥 연구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나라일에 시간을 너무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타려면 우수한 연구인력들이 무슨 위원회 참여 작업이나 좋은 총장 뽑기같은 덜 창조적인 일에서 벗어나 독창적 기초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선결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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