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디의 Cinessay] 형제는 용감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 아랍권에 살았을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랍발 뉴스에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 한편 때문에 이렇게 내 관심이 그쪽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쿠르드족 출신 이란 감독 바흐만 고바디의 2000년도 작품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증오의 시작을 분석하기도 벅찬, 그래서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랍의 분쟁은 너무나 처참하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밥은 먹어야하고, 사랑은 싹트고, 아기도 태어난다. 아파서 수술도 받아야 하고 , 그 와중에 돈을 벌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란, 이라크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의 비참한 현실을 담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과 형제애에 대한 매우 특별하게 아름다운 영화다. 꼭 한번 보시길 권하고 싶다.

출산을 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밀수로 국경을 넘나들다 지뢰를 밟아 역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어린 형제들을 책임져야할 12살 소년 가장 아윱.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막노동을 하는 아윱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형 마디의 수술비 마련이다. 평화시에도 치료하기 힘들어보이는 중증 장애인 마디를 보살피는 형제들의 지극정성은 진심 눈물겹다. 특히 이제 열 살 남짓 되었을 아마네가 하늘을 향해 마디를 낫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장면과 의사를 찾아 진통제를 맞게 하고 왜소증을 앓고 있는 마디를 갓난아기 다루듯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급기야 맏딸 로잔은 마디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시집을 가지만(실제로는 팔려가지만) 시댁 식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결국 아윱은 위중한 마디를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기로 한다. 말조차 취하지 않으면 넘을 수 없다는 그 험한 길을 아픈 마디까지 안고 걸어가는 12살 소년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영화는 야윱이 결국 국경을 넘었는지, 마디는 수술을 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어떤 절망도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역설적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은 국가의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준다. 동시대를 살아도 어떤 아이들은 평화 속에서 모든 교육의 혜택과 풍요를 누리며 자라고 또 어떤 곳에서의 아이들은 이렇게 하루의 삶이 비참하고 절절하다. 어떻게 이 고통과 비극을 멈출 수 있을지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족과 형제의 사랑이 전쟁의 상처를 메우고 있다. 이 세상 분쟁지역의 수많은 아윱에게 전해주고 싶다, 조금 더 버텨달라고, 너희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모든 신에게 빌고 싶다. 공포와 슬픔에 빠진 어린아이들을 구해달라고….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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