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없는 은행이 온다] 2부 <7> 페이팔로 본 미래 지급결제

실시간 주문하고 결제까지… 앱만 깔면 세계 모든 사람과 거래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페이팔 본사 전경. /신무경기자



계좌는 물론 현금·카드 등 모든 종류의 지불결제 가능

금융사기 탐지시스템 구축… 부정사용 손실률 대폭 낮춰

'보안 =투자' 인식 확립해야… 국내 결제시장도 성장 가능


미국 페이팔 본사에서 근무하는 제니는 점심시간이 되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구내식당에 가기 전 페이팔 앱에 체크인해 미리 음식을 주문했다. 페이팔 식당에 설치된 포스(POS) 단말기에는 제니의 얼굴을 포함해 이날 주문한 참치 샌드위치와 과거 구매이력까지 줄줄이 나타났다. 그가 식당으로 내려가자마자 서빙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들고 "제니 씨, 어제랑 똑같은 메뉴를 선택했네요. 오늘 기분은 어때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식사 도중 목이 말랐던 그는 음료를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페이팔 앱으로 요구사항을 쪽지로 보냈다. 구내식당 포스 단말기에는 제니의 쪽지가 실시간으로 팝업돼 나타났고 이를 확인한 식당 직원이 그에게 물을 가져다줬다. 식당에 페이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후 테이블 회전율은 20%가량 개선됐다. 이 같은 서비스는 페이팔 본사를 포함해 미국 전역의 1,000여개 가맹점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상용화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페이팔로 보는 미래 지급결제…무한 영역=기자가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소재 페이팔 본사에서는 제니가 이용하는 페이팔 앱을 포함해 6~8개월 후 지급결제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를 시사하는 전시장이 구현돼 있었다. 페이팔은 지근거리인 지급결제시장의 미래를 소개하고 있지만 시범운영 중인 서비스들은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 업자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넘어섰다. 페이팔이 가상계좌를 보유한 은행이자, 신용공여가 가능한 카드사이기에 가능한 시도들이었다.

페이팔히어(Paypal Here)가 대표적인 사례다.

페이팔 본사 내 '스쿱랜드(Scoopland)'라는 간판이 걸린 전시장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손수레가 있다. 페이팔히어가 설치된 휴대폰과 아이스크림 손수레 하나만으로도 장사가 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구매자가 페이팔히어를 구동하고 고객이 페이팔 앱을 설치했다면 페이팔 계좌를 통한 결제뿐 아니라 현금, 신용카드, 개인용 수표 등 모든 종류의 지불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

페이팔 직원인 에릭은 "페이팔의 DNA는 전 세계 생면부지 사람들에게 지불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철학하에) 페이팔히어는 모든 종류의 결제를 지원한다. 이처럼 페이팔은 지급결제의 골자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페이팔히어를 통해 가맹점은 판매이력을 간편하게 훑어볼 수 있으며 지역마다 다른 세금 등을 손쉽게 계산할 수 있다. 호주에서는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으며 오는 2015년 미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서비스는 오프라인에서 소매업자를 위한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개발됐지만 중견·대기업의 수요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페이팔은 이 밖에 루마, 마야, 이노베이션 아레나 등의 이름이 새겨진 전시장에서 비콘(Beacon)을 활용한 실시간 콘서트 입장 체크 서비스, 온오프라인 매장관리 솔루션 등을 구현하고 있다.

◇'보안은 투자'라는 인식 확립해야…국내 지급결제시장 확대 가능=페이팔은 이처럼 간편결제 서비스를 넘어 지불결제 플랫폼 사업자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페이팔은 진화를 위한 핵심 자산을 리스크 관리로 꼽고 있다. 전 세계 페이팔 임직원 1만4,000명 중 500명(20개국) 상당이 리스크팀에서 근무할 정도로 보안투자에 관심이 많다. 페이팔은 다층방어(multi layer defense)로 구매자의 허위청구, 판매자의 위장판매 등과 같은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구매자와 판매자의 거래속도, 계좌 개설 시점 등의 데이터로 오불량을 가려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페이팔은 부정사용 손실률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통상 손실률은 0.25~0.4%이며 지난 분기에는 0.33%를 기록했다. 매일 성사되는 1,000만건의 거래 중 3만3,000건의 승인거부가 일어나는 셈인데 이는 미국 전체 부정사용 손실률(1%) 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 같은 노력은 페이팔의 리스크 관리가 '비용이 아닌 새로운 매출 창출의 기회'라고 여기는 페이팔의 철학 때문에 가능하다.

마이크 버거라 페이팔 고객리스크담당자는 "페이팔의 지난 15년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얼마나 보안을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안전하고 보안성이 있는 결제가 진행돼야만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으며 글로벌 베이스로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 새로운 매출과 수입 창출의 기회가 열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페이팔처럼 보안은 투자라는 인식이 확산돼야만 지급결제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윤종문 여신금융협회 선임조사역은 "페이팔은 전자금융사기 방지를 위해 자체적인 금융사기탐지 시스템(FDS) 구축뿐만 아니라 프로드사이언스 같은 금융보안 업체를 인수해 금융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면서 "국내 금융사들도 이 같은 선례를 본받아 선제적으로 보안강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