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의 가장 큰 재료는 무엇일까. ‘지정학적 요인’이다. 전쟁 가능성과 긴장 정도에 따라 주가가 결정된다. 외국인은 더욱 민감하다. 국가신용등급 결정에 전쟁위험이 1순위 고려대상이기 때문이다. 국제증시도 마찬가지다. 테러가 발생하면 주가는 물론 유가도 춤춘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예측이 쉽지 않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는 데다 군사부문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탓이다. 경제 흐름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전쟁과 테러 위험을 내다보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비슷한 길이 신간 ‘배틀, 전쟁의 문화사’에 있다. 원제는 ‘Battle’. 인간의 전쟁이 어떤 개념으로 치러졌는지, 승패를 결정한 요인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고대 그리스에서 9.11사건까지 내달린 책이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전쟁과 역사에 대한 종합비평세트라는 점이다. 때문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목도 있지만 거꾸로 전쟁사를 바라보는 주류의 관점을 훑어본다는 이점도 있다. 저가는 통념을 맹렬하게 공박한다. 가령 ‘서양의 세계지배는 그리스 시민군의 중장갑보병에서 비롯된 서구의 군사적 전통에서 비롯됐다’는 통설(헨슨, 살육과 문명)을 부인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위기에 몰린 공화정이 내린 국민총동원령 이전까지 시민군대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의 전쟁은 귀족 기사간 신사적ㆍ낭만적 전투라는 각인도 착시. 백년전쟁의 시발점인 1346년 크레시전투에서 장궁으로 무장한 영국 보병대는 3분의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귀족 기사들을 몰살시켰다. 포로도 무조건 죽였을 뿐 아니라 마을을 약탈해 폐허로 만들었다. 병력이 적었기에 포로를 관리할 수 없었고 보급상 현지조달이 불가능하다는 여건이 그렇게 만든 것. 문명의 파괴자라는 징기스칸의 ‘야만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 동양적 전쟁방식을 경멸한 서구의 시각도 비판 대상이다. 서구는 오랫동안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구사한 중국과 인도의 전쟁을 우습게 여겼지만 현대의 전쟁에서는 그 것을 최고로 친다. 승패가 전적으로 과학문명에 달린 것도 아니다. 2차대전 초기 독일이 프랑스에 완승한 이유는 가볍고 빠른 전차부대를 활용한 기동전이라는 독일군의 개념에서 나온 것이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 아랍의 군대가 무능하다는 고정관념도 같은 맥락. 1차 석유파동의 야기한 1973년 10월중동전쟁에서 이집트 육군이 보여준 수에즈운하 도하작전의 완벽성은 전사에 기록될만한 것이다. 저자의 요점은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고유문화에 기인하는 전쟁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인 새로운 형태의 전쟁, 테러에 대한 해법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이 전쟁으로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이라크를 ‘악’으로 규정한 접근방식과 전쟁수행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한다. 문화적 전통과 현상황에 따라 새로운 방식과 담론을 결정하라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전통과 ‘개념’을 중시하는 저자의 관점은 거울로 눈을 돌리게 한다. 23조원 가까운 돈을 국방예산으로 쓰는 우리의 입장에서 어떤 개념을 만들고 선택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780쪽. 2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