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뿌리산업 다시 살리려면


자동차ㆍ조선ㆍ전자ㆍ발전설비 등과 같은 기간산업의 기반이 되는 원천기술인 주조ㆍ금형ㆍ소성가공ㆍ표면처리ㆍ열처리ㆍ용접 등은 이른바 뿌리산업으로 불린다. 뿌리산업은 산업발전의 뿌리를 이루는 원천기술의 보고인 셈이다.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성장동력도 뿌리산업에서 비롯됐다. 외국 언론조차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피지 않는다”고 비유할 만큼 결코 발전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뿌리산업을 키워 경제대국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뿌리산업은 안정 속에서 더욱 심화된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품격을 갖춰 도약하기보다 학벌만능주의에 눌려 기피직종으로 전락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이는 뿌리산업의 강점을 간과한 정책에서 비롯됐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세계 경제의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제조업만큼은 유독 강하다. 일찍이 뿌리기술의 인적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깨닫고 뿌리산업의 뿌리기술을 사활을 걸고 육성했기 때문이다.

주조·금형 등 기술량 쇠퇴 위기

뿌리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장인이 가진 숙련기술의 강점에서 비롯된다. 강점은 극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하우다. 독일ㆍ일본ㆍ스위스 등은 숙련기술인이 대를 이어 뿌리산업을 이끌기 때문에 ‘넘버원’을 넘어 ‘온리원’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강점을 지니게 됐다. 온리원의 기술력은 마치 블랙박스와도 같은 생산자만의 노하우로 그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촌 모든 가정의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쌍둥이 칼을 비롯해 스위스의 아미 나이프, 시계 등은 뿌리산업의 본질에서 비롯된 온리원의 명품이다.

한국이 그동안 기능올림픽에서 18번이나 종합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뿌리기술의 역량에서 비롯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뿌리기술의 역량으로 이룬 세계 최고의 기능강국에서 넘버원을 온리원의 강점으로 키울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경쟁력의 손실이다. 능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교육정서와 원칙 없는 정책이 뿌리산업을 기피산업으로 몰고 간 탓이다.

병역특례 등 우수 기능인 혜택 늘려야

한국의 뿌리산업은 기능경시 풍조와 저임금에 따른 심각한 인력수급 문제를 비롯해 갑과 을의 관계에 종속돼 있는 구조적 모순과 불합리한 이익배분 문제, 환경을 이슈로 한 국민들의 뿌리산업 배척 등에 시달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월 ‘뿌리산업 진흥 및 첨단화에 관한 법률’ 시행을 계기로 뿌리산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지만 절실한 것은 뿌리산업이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제도구축이다. 뿌리산업의 95% 이상이 열악한 중소기업인 현실을 감안하면 온리원의 명품을 만들 강점을 지닌 장인 육성은 힘에 부칠 뿐이다. 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해 뿌리산업을 외면하는 젊은 기능인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우수 기능인 병역특례제도도 뿌리산업체에 혜택을 줄 수 있게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뿌리 없는 식물이 줄기를 뻗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숙련기술인 없는 뿌리산업 육성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 사회는 결코 구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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