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음해정치 이제 그만


길지 않은 기간 정치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가장 아쉽게 느끼는 것은 과연 정치인들의 생각과 언어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을 위하고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고뇌하고 행동하는 것이 기본 자세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상대방 약점 후벼 파고,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자기 존재감 극대화 등을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삭막한 언어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인 것이다.

물론 정치라는 영역이 한 사회에서 쉽게 걸러지지 못한 모든 이해관계가 모여들어 부딪히면서 조정되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인구밀도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나 생존경쟁의 강도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유달리 합의를 위한 노력보다는 인신공격적 언어가 판치는 우리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바꿔보기 위해 그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신문기사 제목과 내용을 보면 아직도 이런 시도들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삶을 챙기는 '정치가'들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음해와 권모술수에만 능력이 발달된 '음해기술자'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정치의 양상은 정권 획득을 위해 얼마든지 나를 내세우고 남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한 것을 왜 문제 삼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럼 우리의 현실이 만족할만한 것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 것인지에 일정한 합의를 이루고 이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가장 아플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데 골몰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가장 아픈 곳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는 수준의 정치를 만들어내는 데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 언론도 기사에 한 줄 실려 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돌출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적절히 걸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이러한 정치인들이 가능한 선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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