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4월25일] 산 레모 협정


1920년 4월25일 이탈리아 휴양도시 산 레모. 연합국 최고회의에 참석한 영국과 프랑스 대표가 협정을 맺었다. 골자는 땅 갈라먹기. 패전 독일의 편을 들었던 오스만 튀르크의 옛 영토 중 중동지역을 분할한다는 것이다. 협정의 목적은 에너지 확보. 1차 대전을 통해 석유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두 나라는 미국까지 따돌린 채 중동의 석유 이권을 나눠 가졌다. 가장 큰 이익을 차지한 것은 영국. 독일이 공들였던 메소포타미아(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먹었다. 프랑스의 영역은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으로 국한됐지만 영국이 개발하는 석유 지분의 25%를 넘겨 받았다. 중동지역의 석유개발권을 보유한 터키 석유회사의 독일 지분 25%를 얻는 덤도 챙겼다. 석유 메이저의 하나인 프랑스 국영석유회사(CFP)도 협정 직후 태동한 것이다. 산 레모 협정은 아랍 민족의 반발을 낳고 운명도 갈랐다. 종전 후 독립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영국군 정보장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도와 오스만 튀르크군과 전쟁을 치르며 10만명의 전사자를 낸 끝에 다마스쿠스에 자리잡아 시리아 국왕임을 선포했던 파이잘은 프랑스에 의해 쫓겨났다. 영국은 분노한 파이잘을 설득해 명목뿐인 이라크 국왕으로 앉혔다. 이라크 국왕이었던 파이잘의 형은 요르단 국왕으로 왕관을 바꿔 썼다. 미국은 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차 대전 중 연합국이 사용한 석유의 90%를 제공했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지분조정을 요구한 미국은 결국 1927년 23.5%의 지분을 확보하며 중독의 석유 이권에 발을 들였다. 산 레모 협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당시 형성된 영ㆍ미의 중동 지배구조는 여전하다. 두 차례의 이라크 전쟁도 석유 패권 유지라는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비중이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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