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41)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력이 특이하다. 이화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들어갔고 이후 미국 뉴욕대(NYU)에서 뮤지컬 창작을 공부하며 예술학석사(MAF) 학위를 땄다. "어린 시절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 교수는 뒤늦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뎠지만 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겼다. 그리고 소설에서 연기로, 연기에서 뮤지컬 창작으로 도전의 폭을 점점 넓혀갔다. 좋아하는 일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즐거움. 그 덕에 이 교수의 수업은 늘 생기 있다. "이 노래는 2+1, 삼각관계구조(love triangle structure)죠?" "슈렉이 부르는 이 파트는 재미있으면서도 슬퍼요." 이 교수의 '뮤지컬 창작 기초' 수업에서 이 교수의 역할은 '뮤지컬 들려주는 여자'다. 75분 동안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이 교수는 평균 4~5곡의 뮤지컬 음악을 들으며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하고 가사를 들려준다. 때로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한다. 2~3분 정도의 음악이 끝날 때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Song form(노래 형식이 무엇이냐)?'이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학생들의 답변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학생들은 친근함을 느낀다. 이 수업을 듣고 있는 박예슬(신문방송학과 4)씨는 "지식전달이 아닌 예시와 코멘트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돼 재미있다"며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임에도 특히 교수님이 편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하셔서 수강신청 경쟁이 세다"고 말했다. ◇창의적 아웃풋(output) 원해=이 교수가 이번 학기에 맡고 있는 과목은 '뮤지컬 창작 기초'와 '대본 창작의 기초'로 모두 창의성을 요구하는 수업이다. 특히 뮤지컬 창작 기초는 학생들이 직접 뮤지컬 가사를 쓰고 학기 말에 10분짜리 뮤지컬 대본과 가사를 써야 한다. 수업 자체가 지식쌓기보다는 창작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에 이 교수는 최대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꺼내는 창작수업인 만큼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릇'을 주려 한다"며 "이 점이 내 수업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학생들이 인풋(input)한 것을 창조적으로 아웃풋하는 것 같다"는 제자 칭찬도 잊지 않았다. ◇피드백이 더 중요=이 교수의 수업은 '준비'보다 'AS'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그 생각에 대한 피드백이 중요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대본 창작의 기초는 일주일에 두번 있는 수업에 모두 과제가 있고 뮤지컬 창작 기초는 2주에 한번꼴로 과제가 있다 보니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읽어보고 코멘트를 해주면 하루가 다 간다. "과제에 코멘트를 적어주면 학생들이 더 보람 있어 하는 것 같다"는 이 교수는 모든 학생들의 과제에 늘 파란색 볼펜으로 일일이 평가를 써준다. ◇뇌의 안 쓰는 근육 만져주고 싶어=이 교수는 "뇌의 안 쓰는 근육을 만져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꾹꾹 지식을 눌러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거창해 보일 수 있는' 자신의 바람을 수업시간에 여러 번 시도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만화ㆍ소설의 주제가(theme song)를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그러고는 "나는 만화영화 뽀로로 주제곡에서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부분이 가장 좋더라"라고 농담을 던지며 '주제가 속에는 이렇게 '찡' 하는 게 있어야 한다'는 키워드를 쉽게 전달한다. 그는 "막상 주제가를 쓰라고 하면 당황하다가도 결국 잘해낸다"며 "학생들이 실제 노래를 쓰고 만드는 길로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안 쓰는 근육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지우 선생 수업 기억에 남아=이 교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황지우 시인의 '명작 읽기' 강의를 좋아했다. 오후에 시작한 수업이 밤 늦게 끝날 정도로 하나의 주제에 대해 파고드는 심도 있는 수업이었다. 그는 "이러다 보니 학기 초에는 하루에 하나씩 명작을 읽도록 계획돼 있었지만 한 학기 내내 그리스 명작만 하다가 끝났다"며 "그래도 그리스 문명과 신화ㆍ희곡 등을 깊이 공부할 수 있어 마음에 들었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어떤 선생'아닌 '어떤 수업'으로 기억되고 싶어=황 선생의 '명작 읽기' 강의가 이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강의듯 이 교수 또한 수업으로 기억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기보다는 '어떤 수업'으로 학생들 기억에 남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학생들 스스로 '내 안에 이런 놀라운 이야기들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표현하고 공유했던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이 교수. 오늘도 그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이고 진솔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멋진 그릇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1969년생. 1992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를 나와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02년 뉴욕대(New York University)에서 뮤지컬 극 창작(Musical Theatre Writing)을 전공해 MFA학위를 받았다. 2009년 서강대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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