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20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개혁은 활주로 벗어난 보잉기와 같다"
멈추면 추락…끝없는 위기의식 바탕으로 질적 성장해야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이후부터 은둔의 경영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본인의 생각을 경영진에게 주문하면 경영진이 삼성 전체를 움직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는 회장 취임 1주년이 된 1988년부터 개혁의 필요성을 경영진에게 강조하고는 했다. 그러나 돌아온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회장은 결국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이뤄지기 직전인 1993년 3~6월 LA와 프랑크푸르트ㆍ오사카ㆍ도쿄ㆍ런던을 오가며 1,800여명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장 500여시간에 걸친 대장정의 강연을 이어갔다. 양보다는 질 경영이 필요하며 개혁으로 이를 바꿔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같은 해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호텔에서 사내 방송팀이 제작한 불량 세탁기 조립 과정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이 회장은 이학수 당시 비서실장에게 강하고도 분명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지시를 수행하라고 주문했다.

"내가 수년간 질 경영을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변한 게 고작 이겁니까. 사장들과 임원들을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시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섭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이뤄진 직접적인 배경이자 삼성의 신경영이 공식화된 계기다.

신경영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질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적 경쟁에서 과감히 벗어나 질 위주로 제품을 만든 뒤 글로벌화되는 시대에 경쟁력을 높여 21세기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것이 신경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 회장의 생각은 당시 삼성의 모든 임직원에게 쉽사리 녹아들지 못했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항상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이제는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2류, 3류도 자기 영역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세계가 하나가 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위기의식이 없는 무사안일입니다."

보잉747론도 그가 개혁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중요한 예로 사용되고는 했다. "삼성의 개혁은 활주로를 벗어난 보잉747과 같은 상태입니다. 보잉747은 발동을 걸어 일단 활주로를 뜨고 나면 계속 올라가서 불과 몇 분 사이에 1만m까지 쭉 올라가야지, 중간에 멈춰버리면 공중폭발하든가 추락해버립니다. 이대로 추락해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이 회장은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뒷다리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양자강론, 삼성 임직원에게 상벌의 기준이 되고 있는 당근론 등을 통해 임직원의 의식개혁에 직접 나섰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삼성의 신경영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삼성 DNA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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