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왜 이렇게 비쌀까? 고고한 그림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이규현 지음, 알프레드 펴냄
전체 그림값만 7조 달하는 고가 작품 1위~100위 정리
미술사적 가치·비싼 이유, 그림에 얽힌 이야기 들려줘

폴 세잔의 대표작인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2011년 카타르 왕족에게 약 3,000억원에 팔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진제공=알프레드


피카소의 그림은 비싸다. 그런 피카소 그림 중 유독 비싼 그림이 있다. 그가 45세에 만난 17세의 소녀 마리-테레즈 월터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들이다. 스물여덟 살 연하의 애인을 만났을 당시 이미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올라 있던 피카소는 아내 올가와 무척 사이가 나빴다. 아내에 비해 예술적·지적 수준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이 순종적인 어린 애인에게 빠져들어 9년이나 '두 집 살림'을 즐겼고 딸도 하나 두었다. 피카소는 특히 1931년 12월부터 1932년 3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렸고 최소 28점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잠에 빠져든 마리-테레즈 월터를 정면에서 그린 작품 '꿈'이다. 붉은색 소파에 몸을 기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잠든 여인은 둥근 어깨선을 따라 옷이 흘러내려 한쪽 가슴이 봉긋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2013년 3월 1억5,500만달러(약 1,626억원)에 헤지펀드계의 큰손이자 SAC캐피털 회장인 스티브 코언에게 팔렸다.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가격에 말이다.

마리-테레즈 월터는 유난히 잠이 많았고 피카소는 '잠자는 미녀'라는 소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벌거벗은 채 누워 잠든 여인을 그린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은 201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648만달러(약 1,117억원)에 팔렸다. 당시 경매사상 최고 기록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9위인 작품이다. 이 외에도 '검은 팔걸이의자에 누워있는 누드'나 '금발의 여인' '잠' '꿈꾸는 사람' 등 피카소가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린 그림은 모조리 고가에 거래됐다. 원근법 파괴와 공간적 다시점 적용이라는 피카소의 미술사적 업적 외에도, 예술가로서 가장 왕성한 50대의 화가가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사로잡을 만큼 남성적으로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과시한 듯한 그림이라는 숨은 사연이 그림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결과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들의 미술사적 가치와 함께 작품이 거래된 미술 시장 뒷얘기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세계에서 최고 비싼 그림은 폴 세잔의 대표작인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로 2011년 약 3,000억원(2억5,000만 달러)에 거래됐다. 그림을 산 사람은 카타르의 왕족이었는데,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에 아낌없이 돈을 쓴 이유는 카타르국립미술관에 전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비싼 그림 치고 곱고 예쁘기만 한 그림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미술경매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 초상 습작 삼부작'(약1,494억원·3위)은 기괴하게 뒤틀린 고기 덩어리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외형이 아닌 '내면'을 그렸다는 점에 있다. 2006년에 약 1,469억원(4위)에 팔린 잭슨 폴록의 '넘버5'는 물감을 마구 흩뿌린 그림이며 1,443억원(5위)짜리 윌렘 드 쿠닝의 '여인3'은 낙서하듯 갈겨 그린 뚱뚱한 여인 인물화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258억원·7위)나 실제 자동차 사고 사진을 재구성한 앤디 워홀의 '실버 카 크래시'(1,106억원·10위)도 끔찍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저자는 그림값을 결정짓는 것은 드러나는 이미지가 아닌 "기존 예술 경향을 뒤엎고 새로운 시대를 연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임을 거듭 강조한다. 책에 소개된 작품 100점의 값을 합하면 7조 원 규모. 부록 격인 '집필 기간에 100위 밖으로 밀려난 작품들'과 '위대한 예술과 41인의 작품세계' 또한 미술시장 경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읽을거리다.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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