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설, 백화점 그리고 재래시장

설을 열흘 앞둔 18일 낮 도심의 대형 백화점 매장. 평일인데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정기세일에다 설 대목 영향이 크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소비심리 회복도 한몫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백화점마다 이달 실적이 전년보다 10~20%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매장 직원들이 환하게 웃는 이유다. 같은 시각 그 백화점 길 건너편의 남대문 시장.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가끔씩 가격을 묻는 손님들만 몇몇 있을 뿐 상인들의 신바람 나는 흥정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가게 주인들이 한숨만 내쉬는 이유다.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소비 온기는 재래시장으로 퍼지지 않고 있다. 사실 이 같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의 상반된 모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편의성ㆍ품질ㆍ접근성 등을 내세운 대형 마트가 갈수록 상권을 파고들면서 재래시장의 손님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뢰 문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중합작산 굴비’가 단적인 예. 얼마전 관계기관에서 명절을 앞두고 원산지 검사차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한 굴비가게에 들러 원산지 표시를 보니 ‘한중합작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담당 공무원이 의아해 물었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중국에서 잡아 한국에서 파니 한중합작산 아니냐. 그리고 누가 중국산이라면 사겠느냐”며 오히려 역성을 냈다고 한다. 황당해 하던 그는 “그럼 이 가게에 한국산 굴비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마리도 없다”는 대답만 확인했다. 소비자들이 시장보다는 백화점이나 할인점을 신뢰하는 이유다. 물론 이 같은 일이 모든 재래시장에서 일어날 리는 만무하겠지만 많은 상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가야 할 길은 뻔하다. 신뢰 회복이다. 그것도 가능한 빨리 해야 한다. 그래야만 등돌린 소비자들 얼마만이라도 발 길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 경쟁력 있는 저렴한 가격, 충성도 높은 손님들의 입소문, 정부의 지원 등이 보태지면 재래시장의 옛 명성을 되찾는 일도 그리 어렵고 먼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사족을 달자면 재래시장은 아직도 100조원이 넘는 국내 유통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서민경제의 젖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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