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은 20년 가까이 신한을 이끌면서 사실상 '주인' 역할을 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이를 '대리인의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을 함에도 자신이 회사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해 지배구조를 훼손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일까. 최고경영자(CEO)의 나이를 제한하는 것이 금융회사에 확산되는 모습이다. 나이를 제한하면 자연스럽게 과도한 임기 연장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은 금융회사에 머물고 있지만 여타 제조업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취임 100일을 기념해 30일 열린 기자간담회. 신한지주는 이날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으면서 그 핵심으로 새로 선임될 CEO의 나이를 67세로 제한하는 내용을 꺼냈다. 뿐만 아니다. 연임을 할 경우에도 재임 기한은 70세까지만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하나금융그룹도 CEO를 비롯한 이사들의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하는 내용의 '기업 지배구조 규준'을 제정했다. 김승유 현 회장은 올해로 만 68세다.
이 같은 움직임은 비단 대형 금융지주회사에만 국한되고 있지는 않다.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을 비롯한 이 회사의 창업 공신들도 자신들이 과도하게 늙은 나이까지 남아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현주 회장이 이제 고작 53세이고 최현만 부회장 역시 갓 50세를 넘겼다. 이들에게 '퇴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이들 스스로가 늙은 나이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조직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지배구조의 참신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가 보여준 자연스러운 승계의 모습은 금융회사들에 제대로 된 지배구조가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한다"며 "나이를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지배구조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나이 제한이) 과도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모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