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수출하는 사람은 애국자, 수입하는 사람은 매국노라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알아주십사 하는 것은 수입도 국가경제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 3월 신태용 한국수입업협회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한 말에서는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원유ㆍ철강 등 원자재와 자본재 수입이 90%에 달한다"면서 "수입이 없다고 치면 우리나라 완성품의 수출도 없을 것이다. 수입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고가 명품 등 우리가 흔히 수입품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재 제품은 전체 수입품 가운데 10% 밖에 되지 않는다.
수입업체가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사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A사는 일본 화학회사로부터 한국 판매 대리점권을 취득해 안료ㆍ염료ㆍ정밀화학제품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30여년간 국내에 공급, 국내 중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일본업체가 A사와 계약을 취소한 후 A사와 거래했던 국내 업체들은 같은 제품을 3~4배 이상의 가격으로 납품 받고 있는 실정이다. B사는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의 장비를 다른 외국회사의 공급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국내 업체에 공급하고 이 장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끔 지원함으로써 국내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 완성품의 수출경쟁력 제고 이외에도 수입의 순기능은 또 있다. 특정 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갔을 때 해당 제품을 수입함으로써 물가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아울러 수입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수출하는 국가의 제품을 일정 부분 수입함으로써 무역 상대국과 통상마찰을 줄이는 효과도 낸다.
이 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수입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는 게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수입업계에도 '손톱 밑 가시'가 존재한다. 우선 장비 수입과 관련해 승인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C사의 한 관계자는 "장비를 수입할 때 안전인증ㆍ전파관련인증ㆍ설계승인 등을 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고 번거로운 점이 많다"며 "선진국의 인증이 국내에서도 허용이 될 수 있도록 '상호교차인증'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입검사 시간의 지연도 문제로 언급한다. 정밀가공기계를 수입해 국내 제조 업체에 납품하고 있는 D사는 "국내 보세창고에서 수입검사 지연 등으로 인해 국내 업체에 납품을 약속한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기업 신뢰도 하락 및 지체상금 발생 등 손실을 입게 된다"며 "특히 정밀가공기계의 경우 국내 설치를 해외 기술자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해줘야 하는데 통관이 지연되면 인건비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E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유럽연합(EU)에서 수입 시 6,000유로 이상인 경우에는 EU 지역의 수출업체가 당사국 상공회의소에 정식으로 수출등록이 안 돼 있으면 관세를 우리 측에서 지불해야 한다"며 "한미 FTA처럼 6,000유로 이상일 경우에도 손쉽게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