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유통기한 표시' 유연해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오는 12월부터 식품 포장에 표시되는 제조일자나 유통기한 등의 활자 크기를 크게 하고 맥주에도 유통기한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식품 표시 기준’을 개정한다. 이에 따라 유통기한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식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들이 꼼꼼히 살펴보는 것 중의 하나가 유통기한이다. 유통기한에 표기된 숫자는 소비자들이 안전성을 체크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식품위생법에는 유통기한의 정확한 정의를 ‘유통을 시킬 수 있는 기한’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 대다수는 유통기한의 의미를 ‘먹을 수 있는 기간’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특히 상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유통기한 설정은 더욱 문제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최적 상태를 표현한 것이지 이 기간이 지나면 전혀 먹지 못하는, 손상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와 장류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조상은 발효균이 식품의 변질을 막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원리를 체득, 김치ㆍ간장ㆍ고추장ㆍ된장 등 세계적인 식품을 만들었다. 장류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한 집안의 음식 맛의 원천이 됐으며 김치는 집에서 담가 취향에 따라 묵혀먹고 찌개 등의 재료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식품들이 상품화되면서 유통기한을 의무적으로 표시하게 됐다. 유통기한 표시가 안 되면 상품화가 불가능한데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할 경우 영업 정지와 검찰 고발 등 법적 제재까지 받게 된다. 이 같은 유통기한에 대한 획일적인 법 적용은 국내 우수 식품이 세계적인 상품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상이 다양화되면서 식품의 다양화도 거스를 수는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따라서 유통기한 역시 상품의 다양성에 맞춰 설정돼야 한다. 다양화 시대에 편리한 관리만을 목적으로 획일성으로 일관한다면 우수 상품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상품의 고유성을 살려 유통기한도 유연하게 표시하게 하는 유연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얘기다. 보존 및 보관 방법이 다양화된 환경에서 다양한 표시 방법을 연구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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