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도시 재생으로 활로 찾자] <2> 작고 느린 재생이 글로벌 추세

일본 가쿠라자카 거리, 에도시대 모습 살려 역사 숨쉬는 마을로
전통가옥 문화재로 지정하고 신축건물 높이 제한
지역특성 맞는 유리공예산업을 새 동력으로 키워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시의 중심 시가지 모습. 1970년대 이후 쇠락 일로에 접어들었던 나가하마시는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구로카베라는 민간 조직을 설립, 유리공예산업의 중심지로 바꿔놓으며 도시의 활력을 되찾았다.

일본 도쿄 우시고메 가구라자카 역 입구에서 나와 동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신주쿠구의 가구라자카 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서 에도(현재의 도쿄)로 옮겨왔을 때 조성된 마을로 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거리 주변 건물은 3~6층 정도로 나지막한데다 거리 초입에는 비샤몬텐 선국사가 있어 도쿄의 다른 상업지와는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특히 건물 뒤편의 아기자기한 골목은 400여년 전 에도 시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고층 빌딩은 가구라자카가 거대 자본의 개발 압력에 맞서 힘겹게 자신을 지키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후쿠이 세이치로 가구라자카 상인연합회 회장은 "가구라자카 상인들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거리의 풍광을 치열하게 지키고자 했던 이유도 저 고층빌딩들 때문"라며 "그나마 상인들이 열심히 싸워 지금의 거리가 전통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은 지역의 특성과 문화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생사업은 재개발 식으로 획일화됐지만 일본과 독일·미국·영국 등 우리보다 앞서 도시재생을 고민한 국가들은 다양한 재생사업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거나 마을의 새로운 동력을 심어 활기를 되찾게 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외국에서는 이미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가구라자카와 시가현 나가하마시는 이런 다양한 재생사업의 모델로 꼽히는 곳이다.

◇가쿠라자카의 역사·문화가 숨 쉬는 마을 만들기=도쿄의 시부야·신주쿠·이케부쿠로와 달리 일본 버블경제 시기에도 개발 광풍에서 한 발 비켜나 있던 탓에 가구라자카는 상업지역으로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반대로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던 덕분에 도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울의 인사동이나 북촌과 닮았다. 가구라자카에서 게다와 기모노 등을 판매하는 유한회사 스케로쿠는 개점한 지 103년이나 된 곳이다.

이 때문에 가구라자카의 도시재생사업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특히 상인들은 가구라자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풍광을 지키는 데서부터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를 시작했다. 골목길을 에도 시대의 모습대로 보존하는 한편 전통 가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자본의 개발 압력에 대항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건물의 신축을 막지 않았다. 가로의 풍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축 건물을 높이 31m까지는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상인들 간 합의를 통해 제안된 가구라자카 마을 만들기 협정은 신주쿠구의 지구계획에 포함돼 이제는 어느 정도 강제성도 띠게 됐다. 가쿠라자카의 마을 만들기는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상인들은 '전통적노지보전전문부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가구라자카의 보존과 개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후쿠이 회장은 "가구라자카를 찾는 사람들은 옛 모습을 지켜온 길과 가게가 갖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라며 "겉에서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가구라자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그 멋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단에서 유리로…나가하마시의 변신=가구라자카가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 시가현 나가하마시는 시의 부흥을 위해 기존의 지역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마을 만들기에 성공한 사례다.

나가하마시는 한때 연간 12개 이상의 가부키 축제가 열릴 정도로 부흥했던 비단 산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70년대 고도성장기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교외화 현상이 급속화되면서 나가하마시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87년 나가하마시의 상징이었던 구로카베 은행 건물이 매각·철거 위기에 놓이자 지역 상인들을 중심으로 매입 운동이 일어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재생사업을 주도하는 ㈜구로카베가 설립됐다. 이후부터 나가하마시의 재생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논의 과정에서 향후 나가하마시를 이끌어갈 새로운 문화산업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대안으로 유리공예가 낙점됐다. 유리공예는 나가하마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구로카베 은행 건물 주위로 점포와 공방·체험관·박물관이 들어섰으며 '글라스가도'로 이름 붙여진 거리에는 100여개의 유리 관련 점포들이 몰려 성시를 이루게 됐다. 사사하라 모리아키 전 ㈜구로카베 대표는 "구로카베 주주들과의 토론 끝에 역사성과 문화예술성, 국제성을 가진 대안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1980년대 70개까지 줄었던 상점이 300여개까지 늘어난 나가하마시에는 해마다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나가하마시를 대외에 알리는 비영리단체 '마치즈쿠리 야쿠바'의 야마자키 히로코씨는 "이곳은 예전에 660개 상점이 성황을 이뤘던 곳"이라며 "아직도 재생사업은 진행되고 있으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주민과 상인들의 노력으로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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