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04년의 '나비효과'

강창현 <문화레저부장>

‘어린 시절의 끔찍한 상처를 지니고 살고 있는 주인공 에반. 그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히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어릴 때의 일기를 읽다가 일기장에서 시공간 이동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사소한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고쳐나간다. 과거를 수정하기 위해 어릴 때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럴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돼간다.’ 올해 화제를 일으킨 미국영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미국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1월 극장에 올린 후 12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몰이를 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인 나비효과를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삶에 빗대 만든 영화다. 이제 2004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추운 세밑이다. 올해는 거리에서 그 흔한 캐럴 한 곡도 즐겁게 듣지 못한 것 같다. 이럴 때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으면 하는 ‘원초적 본능’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식에 투자했으면 손해를 입지 않았을 텐데’ ‘집을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회사를 옮기지 않아야 했는데’ 등등. 이맘때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 생각이다. 특히 즐거운 일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은 다시 연초로 돌아가 잔뜩 꼬여버린 자기 삶을 바로잡아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올 한해 갈등과 질곡에서 허우적거렸던 우리 사회를 연초로 돌려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고 싶을 것이다. 신문사들이 선정한 올해 10대 뉴스를 살펴봐도 즐거운 기사보다는 우울한 기사가 훨씬 많다. 오죽하면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골랐을까.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암시하는 것은 사소하게 여겼던 사건이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점에서 출발한 두 선분은 아무리 작은 각에서 시작했더라도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간다. 일년 내내 우리 사회를 괴롭혔던 경기침체ㆍ실업문제 등도 과거에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단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카드사의 부실이 경제 전체를 위협하고 한 기업체의 소규모 파업이 노동계 전체의 움직임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2005년 새해다. 한해한해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지만 내년은 개인이나 우리 사회가 ‘후회’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 내년에도 분명 정치ㆍ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경제는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 경제가 향후 재도약할 것인지, 저성장 구조로 떨어질 것인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바로 내년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경제주체들을 다독이고 사회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시행착오는 줄여야 한다. 충분히 사전 검증한 후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결정이라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을 결단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해야 한다. 내년에는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가 보다 훌륭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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