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노력" 선언했지만… 한국축구 막막한 미래

정몽규 협회장,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
땅매입 논란 홍명보감독 사퇴… 허정무 부회장도 자리 물러나
기술위, 개편에 시간 걸릴 듯
인재풀 얕아 차기 감독 고민… 독이 든 성배 누가 맡을지 의문

한국 축구가 원점에 섰다. 첫 과제는 새 감독 선임. 그런데 쉽지가 않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 형식의 발표문을 읽었다. 정 회장은 "브라질 월드컵 성적 부진(1무2패)에 이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많은 팬 여러분과 미디어의 질타를 겸허히 수용하겠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기술위원회를 대폭 개편하고 후임 대표팀 감독도 조속히 선임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다시 한 번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협회 임원진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

대표팀 성적에 대해 축구협회장이 머리를 숙이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협회로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월드컵 성적과 사후 대처에 국민의 실망이 컸다는 얘기다. 정 회장의 발표에 앞서 이번 대회 선수단장을 맡은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책임을 통감한다. 앞으로도 한국 축구를 위해 협회를 도와달라"며 사퇴를 발표했고 홍명보 대표팀 감독도 "오늘로 선수·코치·감독으로서 24년간의 대표 생활을 정리하고 이 자리를 떠나겠다"며 지휘봉을 내려놨다.

1주일 전 기자회견에서 허 부회장은 "홍 감독이 벨기에전(0대1 패) 뒤 두 번이나 사퇴 의사를 전해왔으나 회장님이 만류했다. 홍 감독도 앞으로 더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며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홍 감독을 재신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주일 만에 뒤집힌 셈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서판교 토지 매입을 위해 땅을 보러 다닌 사실이 보도되고 16강 탈락 뒤 현지에서 가진 밝은 분위기의 회식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을 극복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은 "(토지 매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훈련 시간에 나와서 한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음주와 가무를 곁들인 회식에 대해서는 "사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선수들과의 마지막 자리였다. 슬픔이 깊었던 선수들을 마지막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사퇴를 발표할 수도 있었겠지만 뒤에 있을 비난까지 끝까지 받고 떠나는 게 제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수 선발과 관련한 '의리 논란'에는 "세상에 누가 좋아하는 선수들만 데리고 월드컵에 나가겠나. 더 철저하게 검증했고 냉정하게 판단했다는 것을 100%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감독인 허 부회장과 런던 올림픽 동메달 감독 홍명보의 사퇴로 '뼈를 깎는 노력'을 동반한 새 출발을 선언한 축구협회는 그 첫 단추인 차기 감독 선임부터가 막막하다. 감독추천 권한을 가진 기술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정 회장이 이날 밝힌 기술위 대폭 개편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협회가 갖고 있는 '인재 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1년 전 홍 감독을 뽑을 때 후보군에 있던 마르셀로 비엘사(아르헨티나) 등 세계적 명장들은 모두 다른 팀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외국인 감독의 경우 경력이 미미한 인물에게 대표팀을 맡길 수 없다는 논리에서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국내파로 쏠린다. 황선홍 포항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이 첫손에 꼽히지만 함께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홍 감독의 씁쓸한 퇴진을 보고도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 축구는 격랑의 '포스트 홍명보' 시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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