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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8월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된 동대문구 신설동 89 일대. 8년 전인 2004년 6월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이후 정비사업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결국 사업이 없던 일이 됐다. 지하철 1ㆍ2호선이 환승역인 신설동역과 맞닿아 있는 요지여서 해당 자치구의 개발 의지가 강했지만 정작 대부분이 노년층인 주민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비예정구역으로 묶인 탓에 주택 개량조차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시가 뉴타운 출구전략 발표 이후 첫 해제지역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다. 이 지역의 한 주민은 "재개발 하면 좋겠지만 돈이 많이 든다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집이 너무 낡아 이제라도 고쳐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첫 단계인 '정비예정구역' 지정을 중단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주민 의사를 무시한 지자체 위주의 일방적인 구역 지정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주민들의 재산권만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로 서울시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무더기로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앞으로는 노후도 등 정비사업의 필요성 못지않게 주민들의 사업 의지를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갈등만 부추긴 무더기 예정구역 지정=서울시는 2004년 5월 '2010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무려 299곳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계획은 2003년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지정해야 하는 정비예정구역을 선정하기 위한 작업이다. 시가 내놓은 10년 재개발 청사진은 2005년까지 120곳, 2006년부터 2007년까지 95곳, 2008년부터 2010까지 94곳을 재개발을 통해 순차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불과 1년 뒤인 2005년에는 2010년까지 재건축 사업으로만 361곳을 개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2년 동안 무려 660곳이 무더기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셈이다.
이 같은 서울시의 대규모 정비예정구역 지정은 당시 서울시내 땅값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2004년에만 전년 대비 4.1%가 오른 서울시 지가는 2005년 6.5%, 2006년 9.1%로 더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했다.
땅값이 치솟다 보니 당시 주민들도 정비예정구역 지정을 적극적으로 반겼다. 심지어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28곳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무더기로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정비사업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2007년 5.8%나 올랐던 서울 땅값은 2008년 들어 오히려 1%가 떨어졌다.
이렇게 주택경기 침체로 주민들의 손익계산서가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곳곳의 정비사업이 좌초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에서도 땅값 하락과 치솟은 사업비 때문에 주민 갈등이 불거졌다. 특히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 증개축이나 필지분할 등 건축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탓에 가뜩이나 낡은 주택가 슬럼화가 심각해지는 문제를 야기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2년 2월부터 전체 뉴타운·재개발구역의 절반이 넘는 324개 구역에 대해 실태조사를 진행해 지금까지 148개 구역에 대한 해제 절차를 밟았다.
◇재개발·유지관리 투트랙으로 관리=서울시가 '신규 정비예정구역 지정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다. 주민 의사를 묻지 않은 채 관 주도의 일방적인 구역 지정을 중단하고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반드시 따지겠다는 의미다.
주민들의 사업 추진 의사가 강한 노후 주택지는 정비예정구역을 건너뛰고 곧바로 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속도를 높이는 대신 사업 반대 의견이 많은 곳은 자유로운 개보수를 통해 유지보수형 재생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다만 '정비예정구역' 자체가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일단 '신규지정 중단'을 통해 과도한 구역 지정을 억제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정비예정구역은 그대로 두되 앞으로는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비사업에 대한 주민 추진의사가 강한 곳은 바로 정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해 사업을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전면 철거방식의 정비사업의 한계를 드러낸 만큼 현행 정비예정구역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도 결국 과거의 틀을 벗어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전면 철거방식의 기존 재개발 사업이 의미를 잃게 된 상황이기 때문에 투기수요를 막기 위한 정비예정구역 단계를 굳이 거칠 필요가 없다"며 "이를 의무 조항으로 두고 있는 도정법 체계도 현 상황에 맞게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