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잡기 '쓸만한 카드'가 없다

■ 이번엔 '물가태풍' 비상美경제등 대외여건 불투명 선택폭 좁아 최근의 물가불안은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과 그대로 들어맞는다. 가뜩이나 위험수위를 맞고 있던 물가가 태풍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가 2일 '긴급 소집'한 물가 관련 장관회의도 당초 안건은 '부동산대책회의'. 그러나 주말 태풍피해가 워낙 커 긴박감이 더해졌다. 문제는 물가불안이 우리 경제를 근원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 정부의 딜레마 시작 물가불안은 크게 4가지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다. 부동산과 태풍피해,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국내요인 3가지와 국제 원자재가격 불안 등이다. 여기서 해외요인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평소 같으면 비상대책이 강구될 만한 시점이다. 그 핵심은 금리인상을 포함한 통화ㆍ재정정책의 재조정.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대외여건이 워낙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선제적인 안정책을 강구해야 할 타이밍이지만 미국경제의 이중바닥(더블딥) 진입이 설득력을 더해가는 상황이어서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짐을 안고 있다.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물가불안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정책수단이 금리 상향 조정이지만 자칫 전세계적인 불황구조가 언제 현실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정책당국의 고민이다. ▶ 해법은 부동산투기 억제 때문에 정부의 선택은 당분간 현재 거시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동산 부문을 집중적으로 억제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은 다른 물가 불안 요인과 달리 그 파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말 그대로 '특단의 대책' 없이는 부동산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한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등 부동산대책이 나온 게 벌써 1년이지만 그 어떤 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며 "조세제도 개편 등 강력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강화, 재산세 현실화 등이 정부의 복안. 그러나 이 같은 세제개편도 적지않은 걸림돌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조세저항을 야기할 수도 있는 정책을 현실화하기가 어렵고 설령 강행된다 하더라도 국회입법 과정 등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의지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다 철저한 세무조사 등 세정강화가 일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무기다. 세제개편으로도 부동산을 잡을 수 없다면 다시금 금리인상 논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우리 경제는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경제를 지탱하는 동앗줄의 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는 셈이다. ▶ 추석물가 10% 이상 오른다 태풍피해로 농수산물의 출하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가격도 하루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추석 물가는 최소한 10% 이상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오이ㆍ상추ㆍ애호박 등 채소류는 지난주 말 태풍의 영향으로 일주일새 30~50% 정도 올랐다. 2일 가락시장에서 오이는 100개들이 상자가 3만3,000원에 거래돼 지난주 말보다 1만원이나 뛰었다. 상추는 4㎏당 1만500원이 오른 2만8,500원에 거래됐다. 애호박도 20개들이 1상자가 2만7,000원으로 6,500원이나 상승했다. 배추도 주산지인 강원 지역의 태풍피해로 출하작업이 중단되자 반입량이 줄어들며 급등했다. 지난 1일 오후11시 경매에 들어간 배추의 경우 5톤 트럭당 595만원에 거래돼 하루 만에 49만원이나 뛰었다. 이는 8월 초에 비해서는 두배나 오른 것이다. 수산물도 태풍의 영향을 받아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바지락은 17㎏당 2만2,500원 오른 6만 5,000원에, 굴은 1㎏당 1,950원 오른 7,750원에 거래됐다. 이상길 농수산물유통공사 유통조사팀 대리는 "태풍 루사가 지나가기 전 추석물가가 10%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 피해로 농수산물 물가가 좀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낙과, 비닐하우스 파손, 농작물 유실 등 피해상황을 좀더 정확히 집계해봐야 예상 물가 상승폭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정영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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