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의 증액분을 국고로 우회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안을 도출함에 따라 영유아를 볼모로 불거졌던 '보육대란'은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됐다. 하지만 국고 증액분을 둘러싼 여야의 최종 합의가 남아 있는데다 지방채 발행에 사태 해결을 의존하고 있어 내년 이후의 근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계에서는 이참에 교육복지특별회계법의 제정과 특별교부금 조정 등의 후속작업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5일 여야 간에 합의된 지원안의 핵심은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의 부족분을 지방채 발행으로 해결하되 정부는 지방채 이자를 보전해주고 교육부 예산을 국고에서 추가로 지원해 증액분이 누리과정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의되는 국고지원액이 2,000억~5,233억원인 데 비해 시도교육청이 필요로 하는 추가예산은 예산 편성이 거부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9개월분에 해당하는 1조5,000억원에 달해 여전히 1조원 이상의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내년 이후부터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전담해야 함을 감안할 때 당장 오는 2016년부터 추가적인 지방채 발행 등을 둘러싸고 또다시 '보육대란' 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교육청들은 이에 대해 현재 내국세 총액의 20.27%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25.27%로 인상해 교육청 예산을 늘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체수입이 거의 없는 교육청들은 보통 교부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국세 총액의 4분의1에 달하는 예산을 유치원·초중고 지원에만 '올인'하는 게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다수다. 교육 분야의 보통교부금이 상향되면 기타 분야에 피해가 돌아가고 일단 확정된 교부금을 되돌릴 길도 모호해 정부의 대응여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각계에서는 이참에 복지사업의 수위와 재원 근거를 확립하는 '교육복지특별회계법' 제정 등을 통해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복지와 관련된 예산은 누리과정과 돌봄교실·방과후학교 등은 물론 대학생 등록금을 지원하는 국가장학금과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고교 무상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현재 교육부가 명예퇴직과 누리과정 등의 예산을 위해 교육청의 지방채 추가발행을 허용하려 해도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교육복지 관련 법규 역시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등의 각종 관련 법에 걸쳐져 있다. 여기에 예산 부담 주체 역시 불명확해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한바탕 기싸움을 벌이는 배경이 됐다. 각종 교육복지 서비스 가운데 수요가 상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분야를 정하고 재정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통합적 법제화가 도입된다면 이 같은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국고지원 역시 누리과정 명목으로는 지원하기 힘들어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 예산 등을 통해 우회지원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교육청들도 올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누리과정으로도 국고지원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미리 반영하기 힘든 특별한 재정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재원인 특별교부금으로 누리과정의 일시지원 등에 나서는 대안도 상존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특별교부금 배분의 정례화 등을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에서 특별교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현행 4%에서 3%로 축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발의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96%의 보통교부금과 4%의 특별교부금으로 구성돼 있어 특별교부금이 3%로 축소되면 지방 교육청의 재량인 보통교부금은 그만큼 확대된다.
교육계는 비록 세부사항을 조율로 남겨뒀지만 여야가 그간의 첨예한 대립 기조를 꺾고 복지 문제의 이념 정쟁화를 지양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울러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복지사업과 관련해 가장 필요한 복지에 우선적인 예산이 배분될 수 있도록 복지 프로그램을 선별하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라 평하고 있다.
하봉운 경기대 교수는 "재정적 준비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교육복지 프로그램은 교육복지의 핵심 목표까지도 훼손하는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가경제력과 저출산대책 등 각종 국정과제에 기반해 '양보다는 질'이 우선될 수 있도록 가감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